1020·남성 "젠더 갈등 심각" 男 31% "남혐 회사 불매로 응징"
젠더 이슈는 기업 입장에서 아주 예민한 문제가 됐다. 논란이 증폭되면 기업 담당자는 물론 대표 사임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젠더 갈등을 일반 소비자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라면 ‘특정 집단’ ‘소수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공론화됐을 때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블록체인 기반 설문조사 앱 ‘더폴’에 의뢰해 6월 7일부터 3일간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들의 젠더 논란에 대한 인식·소비자 행태’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설문 시작 후 이틀 만에 3만명이 넘게 설문에 참여했는가 하면 댓글 역시 수백 개가 달리며 젠더 이슈가 ‘뜨거운 감자’임을 보여줬다.

▷젠더 갈등이 빈부 격차 이어 2위
첫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심한 갈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다. 세대, 지역, 빈부 등 다양한 갈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젠더 갈등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응답률 1위는 빈부 갈등(38%)이 꼽혔으나 젠더 갈등 순위도 만만찮다. 젠더 갈등을 꼽은 응답자는 전체 30%. 빈부 갈등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올랐다. 3위 세대 갈등(15%), 4위 지역 갈등(13%)과는 1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이는 6년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중앙선데이가 추진한 ‘국민인식조사’ 당시 순위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15년 조사에서는 빈부 1위, 이념 2위, 지역, 세대 갈등이 뒤를 이었다. 남녀 갈등을 꼽은 비율은 가장 낮았다.
김나미 삼육대 스미스학부대학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변화하며 이 불균형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쉽지 않은 여정인데, ‘젠더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눈길 끄는 것은 연령별, 세대별 인식이다. 10대와 20대는 젠더 갈등을 가장 심각한 갈등(45.4%, 49.8%)으로 꼽았다. 2위 빈부(26.9%, 25.9%), 3위 세대(10.9%, 12.6%), 4위 지역(9.1%, 7.2%) 갈등과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30대도 젠더 갈등을 선택한 비중이 상당하다. 1위 빈부 갈등(37.1%)과 2위 젠더 갈등(35.4%)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40대 이상은 빈부 갈등을 압도적인 1위로 꼽았다. 2위 젠더 갈등과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남녀 간에도 인식차가 엿보인다. 두 성별 모두 1위를 빈부, 2위를 젠더로 꼽기는 했지만 남성은 1, 2위 사이 격차가 2.4%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만큼 여성에 비해 젠더 갈등을 좀 더 심각하게 본다는 의미다.
최준영 법무법인율촌 전문위원은 “갈등은 스스로를 피해자나 약자로 생각하는 사람들 반응으로 나타난다. 젠더 갈등이 심해진 원인을 따져보면, 여성은 교육 수준·평등 의식이 높아지며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다. 반면 남성 입장에서는 종전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월적 지위에 제동이 걸리며 피해 의식이 생겼을 수 있다. 양측 교감은 적어지고 주장은 강해지며 갈등이 격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0대와 20대, 남성들이 ‘젠더 갈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 최 위원은 “10대, 20대 남성은 학창 시절을 거치며 남성으로서 어떤 이점을 경험하거나 누리지 못했는데 여성에 대한 혜택이나 배려가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1020 여성 입장을 보면, 학창 시절 남녀 동등하게 성장했고 각종 시험, 진학, 취업 등에서 여성이 우위를 보였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에서는 남녀 평등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다. 최 위원은 “이런 점에 분개하거나 대항하려는 의식이 젠더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응답자 48% “대표가 책임져야”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
“아니다. 공식 사과로 족하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남혐’ ‘여혐’을 연상시키는 콘텐츠를 올렸다가 대표이사가 물러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매경이코노미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대표 사임이라는 초강수를 둘 정도로 젠더 논란이 과연 기업 경영에 중요한 이슈일까.
전 연령대 통틀어 답변자 대다수(48%)가 대표 사임은 ‘적절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남성은 53.7%, 여성은 39.6%가 ‘그렇다’고 답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사업을 한다면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 폄하를 야기하는 콘텐츠를 내보내도록 방치한 책임을 대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공식 사과했다면 문제없다’는 의견도 많다. 응답자의 28%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되 추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하며 공식 사과하면 족하다’는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일부 여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의견도 19%로 꽤 많았다. 설문에 참여한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서나 특히 난리일 뿐, 보통 사람은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쓴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매출·주가 영향 미미…안심 못해
‘남혐 어쩌고 하는 기업은 불매함. 백인들이 백인 역차별 얘기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 vs ‘그 정도로 민감한 사안인지 모르겠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네티즌이 쓴 댓글이다. 실제 ‘남혐’ ‘여혐’ 논란에 휩싸인 업체 중 일부는 불매운동에 직면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반면 또 다른 업체는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설문 문항으로 ‘젠더 논란이 생긴 기업 소비를 실제로 줄인 경험이 있는가’를 고른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업은 ‘다수는 크게 자극받지 않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신경 써야 한다’로 정리된다.
답변자 상당수는 젠더 논란이 있다고 해서 해당 제품을 덜 사지는 않았다. ‘소비를 줄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보통이다’가 31%를 차지한 가운데, ‘다소 적다(17%)’ ‘매우 적다(23%)’고 답한 이가 과반이었다. 30%가 안 되는 이들만 ‘제품 소비를 조금 혹은 매우 많이 줄였다’고 답했다.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회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용민 대표는 “일부 단체가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생각보다 기업 매출이나 주가가 떨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다수 소비자는 이런 사안에 둔감한 편이다. 그렇다고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남양유업처럼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여 있던 회사라면 작은 젠더 이슈라도 화산처럼 여론이 부정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평소 기업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면서 젠더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조사 결과 남성만 놓고 보면 ‘뒤끝’이 좀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여성은 젠더 논란 이후 관련 업체 소비를 줄였다는 이가 20.2%(다소 많다, 매우 많다 합산) 정도다. 반면 남성은 ‘줄였다’는 이가 31.5%다. 이 같은 결과만 놓고 보면 ‘남혐’ ‘남성 차별’ 이슈가 불거진 기업이라면 긴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GS25나 무신사 사례를 복기해보면 이해가 쉽다.
▶기업 경영자 젠더 인식 괜찮나
▷대다수 “글쎄…아직은 미흡”
젠더 이슈에 대한 기업 경영자 인식 수준을 일반 소비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체로 ‘보통(31%)’ 혹은 ‘낮다(30%)’ ‘매우 낮다(23%)’는 의견이 다수다.
최근 여러 회사 사이에서 일어났던 손 모양 디자인 논란과 관련, “이런 손동작 의미를 몰랐던 사람이 더 많다. 대표나 팀장이 나이도 있을 텐데 어떻게 다 알 수 있나”라는 댓글이 올라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다만 이런 낮은 인식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 ‘경영진이 이런 사안에 무지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젠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부 단체나 여론은 ‘문제 해결 의지나 능력이 없는 회사’로 치부해 더욱 분노하고 불매운동 등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사내에 퍼져 있으면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마케팅, 광고를 담당하는 구성원들이 본인들의 젠더 성향을 몰래 상품·서비스·광고·마케팅에 녹여 넣을 수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런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 화두로 자리 잡은 젠더 갈등
응답자 44% “다양성 시대 필수”
기업 입장에서는 젠더 이슈를 경영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인식해야 할 듯싶다. ‘젠더 이슈를 마케팅 등 기업 경영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답변자 44% 이상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진화해가는 과정의 필요 이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나머지 30%도 ‘상황에 따라 중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답변을 했다.
이와 관련 장성철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 ‘상황에 따라 중요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한 이도 적지 않다. 이들도 경영할 때 ‘남혐’ ‘여혐’ 사안을 꼭 알고 고려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젠더 이슈는 경영 필수 고려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3호 (2021.06.16~2021.06.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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