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엔 점8개 박힌 검은돌..종로 SK빌딩 네 모서리의 비밀
(4) 건축물에 숨은 비보·진압 풍수
불길하거나 강한 기운 막아라
옛부터 이어온 '진압풍수' 문화
조선호텔 정문 옆엔 물이 졸졸
KDB생명타워에는 코끼리 4마리
잠실롯데타워 앞에는 괴테 동상
지금은 북한 땅인 개성은 옛날 고려의 수도였다. 개성이 도읍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도선이란 이름의 승려. 불교국가 고려를 세운 왕건의 스승으로 알려진다. 그런 도선은 우리나라 풍수학의 원조로 평가될 정도의 풍수 전문가였다.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 도선이 도읍지를 확정하기 위해 개성 땅을 보던 날은 잔뜩 흐려서 멀리까지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 맑은 날에 보니 멀리 동남향 쪽에 한양(서울)의 삼각산이 마치 도적처럼 개성을 엿보고 있었다. 명당 바깥쪽에서 명당 안을 엿보는 듯한 봉우리를 한문 엿볼 규(窺)자를 써서 ‘규봉’이라 한다. 누군가 담장 밖에서 몰래 집안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으로 주인에게 심리적인 불안감을 주게 마련이다. 당연히 금기되는 풍수다.
그래서 개성사람들은 도적(삼각산)을 막기 위해 불을 밝히고 개를 세워 감시한다는 개념으로 상명등(常明燈)을 세우고 쇠로 열두 마리 개를 주조하여 개성 동남쪽에 배치했다. 지금도 있다는 선죽교 남쪽 ‘좌견교(坐犬橋)’란 이름의 다리는 바로 개가 앉아 도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처럼 불길하거나 강한 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적인 노력을 ‘진압(鎭壓)풍수’라고 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동대문의 또 다른 이름 흥인지문(興仁之門)에 쓰인 ‘之’처럼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려는 ‘비보(裨補)풍수’와는 다소 상반된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비보·진압 풍수를 하나의 문화로 볼 수 있다.
이런 문화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개인은 물론 기업들도 중히 여긴다. 특히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은 재물을 부르는 비보와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액막이용) 진압 풍수 모두 관심이 많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본다.
비보풍수
◆ 종로 SK서린빌딩 거북이 문양
SK그룹 종로 서린빌딩 사옥은 건물 네 모서리를 거북이 문양으로 장식했다. 청계천 쪽 정문 계단에는 머리를 상징하는 검은 돌, 종로 쪽 후문엔 꼬리에 해당하는 삼각 문양을 새겨 넣었다. 거북이가 빌딩을 지고, 청계천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거북이는 장수와 다산을 상징하는 영험한 동물이나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래서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모양의 터를 풍수에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빌딩 정문을 번화한 종로 쪽이 아닌 청계천 방향으로 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뜻하므로 회사가 오래도록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염원인 셈이다.
◆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돌확
청계천같은 물이 가까이에 없으면 어떻게 할까. 서울시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의 환구단 쪽 출입구 옆에는 돌확 맷돌 등 전통 조형물을 활용한 설치물이 하나 있다. 맷돌에서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 돌확에 고이도록 만들었다. 재물이 계속 흘러들어오라는 의미다. 돌확 바닥에는 거북이를 새겨 놓았고, 그 옆에 거북이 알처럼 작은 자갈들을 수북하게 쌓아두었다. 자손만대 번창하라는 소망. 호텔은 물론 많은 건물이 출입구 주변이나 로비 혹은 옥상에 분수대나 작은 연못을 설치해 놓은 것은 이처럼 돈을 부르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강남 테헤란로 두꺼비 빌딩
풍수에서 돈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가 두꺼비다. 특히 금두꺼비는 ‘돈을 토해 사람에게 준다(吐錢給人)’는 전설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권에서 금두꺼비가 동전을 입에 물고 있는 모양의 소품이나 조형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강남 테헤란로 르네상스 사거리 인근에 두꺼비 빌딩이 있는데 이 건물 입구에 금두꺼비 상을 설치해 놓았다. 빌딩주인도, 입점 회사도, 들어오는 고객도 모두 부자가 되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이 두꺼비는 동전을 입에 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풍수적으로 약간 아쉬움을 남긴다.
진압풍수
◆ 강남구청역 더피나클빌딩 위지령비
지하철 강남구청역 3번 출구 앞은 사연이 많은 터다. 논이 많아 논고개(논현동)로 불렸던 이곳은 70년대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83년 들어선 영동백화점은 강남 개발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그러나 인근에 대형 백화점들이 들어서면서 망했고, 이후 나산백화점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나산그룹 부도로 10년가량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되기도 했다.
나중에 백화점 철거공사 중 붕괴사고로 사람까지 다치자 당시 사무용 빌딩으로 재건축하던 건설사가 지하에서 파낸 암석으로 토지신을 위로하는 ‘위지령비’를 만들어 빌딩 옆에 세웠다. “.....이 터에 둥지를 튼 회사와 인간을 어여삐 여기시고 아름다운 복을 내려주소서”. 공손한 글귀지만 불길한 기운을 진압하기 위한 내용이다. 지금은 이 지역에서 가장 비싼 빌딩 중 하나다.
◆ 용산 KDB생명타워 코끼리 석상.
이 건물 정문은 정확히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경복궁 뒤 북악산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의 서쪽 능선은 우백호로 여겨진다. 백호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흰 호랑이다. 흰색은 오행상 쇠(金)에 해당하여, 백호는 호랑이 중에서도 쇠처럼 강한 호랑이로 여겨진다. 사나운 호랑이가 건물을 노려보니 회사가 불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 결국 호랑이보다 힘이 센 코끼리로 제압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코끼리 한 마리였으나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지금은 아빠 코끼리가 짝을 찾아 2명의 자녀를 얻은 듯 3개의 코끼리 석상이 추가로 세워져 있다.
◆ 잠실 롯데월드타워 괴테 상
문학청년이던 롯데 창업주 신격호는 젊었을 때 청년 베르테르와 19살 아가씨 샤롯데와의 사랑을 그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푹 빠졌다. 그 샤롯데를 생각하며 회사 이름도 ‘롯데’라고 지었다. 세계 5위의 마천루 옆에 괴테상을 세운 것은 회사의 정신적 뿌리를 밝히고, 세계적 문호의 이미지를 통해 감성적인 기업임을 홍보하려는 의도이다.
흥미로운 것은 괴테 상과 대각선 도로 건너편에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있다는 점.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 임금이 청나라 태종에 항복하는 모습을 담은 치욕의 기록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조선의 기운을 억압하는 진압 풍수다. 이후 몇백 년 동안 조선은 청나라 앞에 꼼짝도 못 한다. 롯데 괴테 상은 이제 우리가 더는 치욕의 약소국가가 아닌 글로벌 경제 강국임을 상징한다. 삼전도의 굴욕을 이겨내겠다는 역(逆)진압풍수 아닐까.
◆ 장충동 신라호텔 돌탑
지난해까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소박한 돌탑 하나 서 있었다. 2000년대 초 남산 2호터널이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통 되었는데, 터널에서 나오는 나쁜 기운이 그대로 신라호텔을 때려 매출이 줄어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호텔 측은 이를 막기 위해 액막이 탑을 쌓았고, 매출은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신라호텔은 올해 초부터 한옥 호텔과 부대시설 공사로 정문 주위를 재정리하면서 이 돌탑을 일단 해체해 별도 보관 중이라고 한다. 공사가 끝나면 돌탑이 복원될지, 혹 복원이 안 되면 호텔 성장세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글=심재학당, 그림·사진=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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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학당은 풍수학자 심재(心齋) 김두규 교수와 함께 영역이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한다. 고서 강독과 답사를 하며 풍수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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