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에 고전해온 일본車 하이브리드 신차 타고 '씽씽'
직장인 오 모 씨는 요즘 토요타 미니밴 시에나 하이브리드를 살까 고민 중이다. 세 자녀가 성장하면서 가족 여행 갈 때 실내 공간이 넓은 차가 필요했는데 국산 카니발은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오 씨는 “시에나 하이브리드가 카니발보다는 비싸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이라 연비가 좋다는 점이 끌렸다. 일본차는 대체로 국산차보다 잔고장이 적은 만큼 장기간 걱정 없이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토요타·혼다 등 日 브랜드 회복세
▷5월 판매량 전년 대비 22% 증가
한동안 불매운동으로 고전해온 일본차가 서서히 부활하는 모습이다. 올 들어 수입차 시장에서 토요타, 렉서스, 혼다 등 일본차 브랜드 판매량이 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5월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한 2만4080대로 집계됐다. 올해 누적 등록 대수도 12만1566대로 지난해 대비 20.5% 증가했다.
브랜드별로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독일차 브랜드 강세가 여전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5월 한 달간 7690대 팔려 올 들어 5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BMW(6257대)가 메르세데스-벤츠를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차 강세 속에서도 렉서스, 토요타, 혼다 등 일본차 브랜드 판매량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일본차 브랜드는 5월에만 2035대 팔려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21.7% 증가했다. 렉서스는 5월 한 달간 1007대 팔렸고 토요타(626대), 혼다(402대)가 뒤를 이었다. 이들 브랜드는 머지않아 폭스바겐 판매량(1358대)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시장 입지가 탄탄했던 일본차 브랜드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았다.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와중에도 일본차는 판매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독일차 브랜드 점유율은 2019년 54%에서 지난해 61.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미국차 브랜드 점유율도 12%에서 15.2%로 3.2% 수직 상승했다. 이에 비해 일본차 점유율은 2019년 13.6%에서 지난해 7%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일본차의 국내 시장 판매량은 2만1000여대에 그쳐 전년 대비 43% 이상 줄었다. 판매량이 10년 전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일본차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차에 수입차 점유율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려났다. 소비자 외면을 견디지 못한 닛산, 인피니티는 ‘한국 시장 철수’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다.
▶하이브리드 시장 집중 공략
▷시에나 하이브리드, 카니발 정면 승부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절치부심한 일본차 브랜드들이 경쟁력 높은 신차를 대거 선보이면서 판매량을 점차 회복하는 모습이다. 특히 친환경차 대표 모델인 하이브리드 신차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소비자 구미를 당겼다.
혼다는 뉴 CR-V 하이브리드, 뉴 어코드 하이브리드를 동시에 내놨다. 뉴 CR-V 하이브리드는 혼다 최초의 하이브리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델이다. 전면부에는 하이브리드 전용 인라인 타입의 LED 안개등, 후면부에는 하이브리드 전용 리어 범퍼 가니시를 적용해 역동적 외관을 담았다. 연비는 도심 기준 ℓ당 15.3㎞로 4000만원대 가격에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다.
뉴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앞세웠다. 후진 중 후측방 접근을 감지해 디스플레이에 경고를 알리는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 저속에서 전후방의 근거리 외벽을 감지해 부주의에 의한 충돌 회피를 돕는 ‘저속 브레이크 컨트롤’을 비롯해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후측방 경고 시스템까지 갖췄다. 두 모델은 2모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고 출력 184마력 힘을 뿜어내는 i-MMD(Intelligent Multi-Mode Drive) 파워트레인 시스템을 탑재했다.
혼다코리아는 두 모델 중심으로 연간 3000대 판매 목표를 세웠다. “향후 3년 내 4개의 하이브리드 신차를 더 선보여 2024년까지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비중을 80%까지 늘릴 계획”이라는 것이 혼다 측 설명이다.
토요타 역시 시에나 하이브리드, 캠리 하이브리드 부분변경 모델을 잇따라 선보이며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했다.
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미니밴 모델인 시에나 하이브리드는 4기통 2.5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를 탑재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갖췄다. 3060㎜에 달하는 휠베이스로 넉넉한 실내 공간을 자랑한다. 6000만원대의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첫 달인 4월에만 145대 팔리면서 토요타 인기 모델로 올라섰다. 국산 미니밴 대표 주자 기아 카니발과 정면 승부를 펼치는 중이다. 8세대 부분변경 모델로 돌아온 캠리 하이브리드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2000만대 넘게 판매된 ‘하이브리드 세단 대표 주자’답게 수입차 업계 기대가 크다.
렉서스는 대표 세단인 LS 부분변경 모델 ‘뉴LS’로 승부수를 던졌다. 4륜구동 시스템(AWD)과 전자 제어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해 편안한 승차감을 자랑한다. 하이브리드 모델 LS500h에는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모터가 저단 기어에서부터 개입해 변속 감각이 부드럽고 정숙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24인치 대형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12.3인치 터치 디스플레이 등이 장착돼 안전 편의 사양도 업그레이드됐다.
일본차 브랜드마다 하이브리드 모델에 주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기차 전성시대가 도래했지만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친환경차 대안으로 손꼽히는 덕분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장착한 차량이다. 휘발유를 주원료로 사용하면서 전기모터를 보조적으로 활용해 연비를 높이는 구조다.
실제 혼다 뉴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경우 연비가 ℓ당 18㎞에 달해 소비자 구미를 당겼다. 렉서스 하이브리드 인기 모델 ES300h 연비도 ℓ당 17.2㎞ 수준이다. 덕분에 렉서스 ES300h는 올 1~5월 국내 시장에서 2519대가 팔려 전체 수입차 모델 중 4위에 올랐다. 2020년 한 해 5732대 팔려 수입 하이브리드카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토요타 역시 올 들어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 비중이 9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 브랜드들은 일반 가솔린, 경유 차량으로는 현대·기아나 독일, 미국차와의 경쟁에서 승부를 내기 어려운 만큼 하이브리드 시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일본차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하이브리드카 세금 감면 혜택이 줄었기 때문이다. 2019년 140만원 한도였던 하이브리드카 취득세 감면 혜택은 지난해 90만원, 올해는 4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연말에는 하이브리드카 취득세와 개별소비세(100만원) 감면 혜택이 모두 폐지돼 내년부터 세제 혜택이 사라진다.
한편에서는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국산 전기차 모델을 비롯해 테슬라 모델Y 등 다양한 수입 전기차 모델이 쏟아지는 만큼 하이브리드카 인기가 상대적으로 주춤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차 브랜드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는 의미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3호 (2021.06.16~2021.06.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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