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코인사회와 그 적들

이동훈 2021. 6. 1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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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를 대하는 태도엔 '테러와의 전쟁' 버금가는 척결 의지가 돋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채굴에 따른 환경오염을 이유로 비트코인 결제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트윗을 날리자 주요국 금융 당국 수장들이 일제히 암호화폐의 위험성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간 암호화폐 투자를 공언하던 월가 투자은행들뿐 아니라 한국의 금융기관들도 비트코인이 한 달 새 반토막 나자 의기소침해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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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전 세계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를 대하는 태도엔 ‘테러와의 전쟁’ 버금가는 척결 의지가 돋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채굴에 따른 환경오염을 이유로 비트코인 결제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트윗을 날리자 주요국 금융 당국 수장들이 일제히 암호화폐의 위험성을 성토하고 나섰다. 심지어 지난 10일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산하기관인 바젤위원회는 암호화폐가 가장 위험한 자산이라고 일갈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그간 암호화폐 투자를 공언하던 월가 투자은행들뿐 아니라 한국의 금융기관들도 비트코인이 한 달 새 반토막 나자 의기소침해진 모습이다.

금융 당국의 암호화폐 정화 움직임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서두르기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중앙은행 입장에선 암호화폐 대장격인 비트코인 확산이 국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만큼이나 국제 통화 질서를 어지럽히는 눈엣가시로 보이는 듯하다. CBDC가 기술적 측면에서 탈중앙화 등 암호화폐의 블록체인 기술을 차용하면서도 암호화폐의 투기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것은 CBDC 도입을 통한 통화시장 통제가 그만큼 다급해졌음을 뜻한다. 때마침 암호화폐 전도사인 머스크의 비트코인 ‘디스’는 중앙은행 총재들에겐 아돌프 히틀러의 세계대전 항복 선언처럼 들렸을 것 같다.

중국이 대대적인 비트코인 채굴 단속에 나선 것도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선보일 전 세계 CBDC 1호인 ‘디지털위안’ 발행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극적 입장이었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1일 한은 창립 71주년 기념사를 통해 하반기 CBDC 모의실험 착수를 발표했다. 그가 CBDC 도입에 적극적인 BIS의 첫 한국인 이사라는 상징성에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85%가 CBDC 도입을 검토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흐름을 거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CBDC가 몰고올 사회·경제적 파장도 세심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란은행 존 컨리프 부총재의 농담 한마디는 많은 걸 시사한다. 그는 영국의 CBDC인 ‘브릿코인(Britcoin)’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어머니가 아이의 사탕 구입을 막기 위해 용돈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디지털화폐 도입으로 경제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CBDC가 도입될 경우 은행 계좌를 열 수 없었던 신용난민들이 사라지고 결제 및 송금 시간 단축과 수수료 절감 등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각 금융기관을 거쳐야 했던 통화 흐름 분석 등도 중앙은행이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신속한 통화정책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통화권력 강화는 거꾸로 금융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모건 스탠리의 체탄 아야 애널리스트는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리서치 노트에서 수수료를 먹고사는 은행 입장에선 대출 등 고유의 중개 기능을 박탈당하는 ‘탈중개화’ 위험에 빠지면서 의도치 않은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기축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국제 결제 시스템도 어떤 방향으로 치달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컨리프 부총재의 지적처럼 중앙은행이 국민의 모든 거래를 모니터함으로써 발생할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부상할 수 있다. 데이비드 마루섹의 SF소설 ‘카운팅 헤드(Counting Heads)’에서처럼 정부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의 금융 활동이 사전 차단되는 금융 독재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암호화폐는 불륜이고 CBDC는 로맨스라는 ‘내로남불’ 태도가 코인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일지 모른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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