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농촌과 도시의 동행
2020년 12월 KBS 창원방송총국은 ‘소멸의 땅’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방영했다. 이 특집은 장기간에 걸친 저출산, 고령화, 인구 유출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의 60%가량이 30년 내에 소멸할 수 있는 절망적 상태에 있음을 잘 보여줬다. 여기에 작년의 합계출산율이 0.84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지방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머지않아 소멸의 쓰나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돼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감소가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전국의 농촌에 산재돼 있는 마을, 학교, 병원, 시장이 사라질 것이고, 삶의 근거가 되는 다양한 농산물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며,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귀중한 공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농촌이 붕괴되면 결국 도시도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농촌의 과소화와 도시의 과밀화가 서로 얽혀있는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 농촌과 도시가 동행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가장 강력한 대책은 도시에 거주하는 장노년층의 농촌 귀향을 촉진하는 것이다. 한국농촌연구원 조사연구(2019년)에 의하면 대략 1300만명에 달하는 55~74세 도시 주민 중 400만명 정도가 농촌 귀환을 희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움직이면 새로운 일자리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2030세대의 200만명 정도도 농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장노년층과 청년층의 이동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마을별로 주택, 일자리, 의료, 복지, 교육, 문화, 소비 등 핵심적 서비스 인프라를 통합 패키지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장노년층과 청년층 600만명, 여기에 여타 세대의 400만명을 합쳐 최대 1000만명의 농촌 귀환을 희망하는 도시 거주자들이 농촌 체험을 통해 농촌 귀향을 결심할 수 있도록 일차적으로 ‘100만 농촌 서포터즈’ 운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운동은 극심한 인구 감소 위험을 겪고 있는 경북 영양군(지난 5월 기준 인구 1만6394명)과 같은 인구 1만~6만명대의 초과소 지역 73개 군을 대략 1만~2만명 정도의 서포터즈가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역의 명예군민이 돼 농산물 구매와 지역 홍보 등 다양한 지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서포터즈들은 이런 체험을 통해 자신과 인연을 맺은 농촌에서 단기체류, 순환체류 또는 장기체류 등 다음 단계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민간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들도 ESG(환경보호·사회공헌·투명경영) 차원에서 농촌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1960년대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의 거대한 인구 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크게 성공한 기업·기관·대학들이 우수한 인력과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들이 농촌을 도와야 할 때이다.
넷째, 정부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하는 사람·기업·기관·대학·병원 등을 위해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일정 규모 농지(예를 들어 200평)와 주택(25평)에 대해서는 기존의 농지법과 주택 관련 법규에 과도하게 구속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최근 전국도민회연합에서는 이런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대통령 직속의 ‘지방소멸대응국가특별위원회’ 설립을 포함하는 ‘지방소멸대응특별법’ 제정을 제안한 바 있다. 국회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이 일은 도농 협력을 통해 나라를 살리는 국가적 대사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국회와 정부가 즉각적으로 채택해주길 권고한다.
지난 4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산하에 ‘농산어촌유토피아 특별위원회’가 설립돼 활동을 시작했다. 이 위원회는 위의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추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과 생활의 균형 회복을 통해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경제는 세계 10위에 도달했으나 삶의 질은 30위 수준인 부끄러운 불균형을 넘어 국민 각자의 행복을 증진하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제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 그런데 ‘소멸의 땅’을 ‘소생의 땅’으로 바꾸는 이 새로운 길은 도시와 농촌의 동행과 상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성경륭 (농산어촌유토피아특위 위원장·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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