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왜 이준석의 능력주의인가
한계 알지만 돌파구 역할 기대
정치권, 청년 일자리 해법 내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기존 정치인과 다른 것은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낸다는 점이다. 대놓고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를 설파한다. 이 대표는 2019년 6월에 낸 책 『공정한 경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할당제 같은 약자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보증이 오히려 심각한 불공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 입장도 분명히 했다.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공정 경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유라고 봐요.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입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30대인 그가 제1야당 대표가 되자 본격적인 비판과 견제가 들어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12일 “제1야당 대표가 능력대로 경쟁하자고 주장하는데 그것만으로 세상이 이뤄지면 격차는 한없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포용주의의 토대에서 최저한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신복지를 내세웠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에게 열광하는 젊은 남성층이 정말 능력주의의 한계를 모를까. 50대가 능력주의를 내세운다면 자신의 기득권을 합리화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20대가 능력주의를 주장한다면 달리 봐야 한다. 그들은 게임판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2012년 트위터에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그 개천엔 용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추천서나 표창장, 강남에선 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수사를 하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4월(법무부 법무실장 재직 시절) 술자리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 항의하며 했다고 전해진 발언이다. 이것만큼 숨은 사다리를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20대는 오늘의 현실이 은폐된 ‘골품제’나 ‘지위 세습’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 바엔 공정하게 경쟁해서 능력 있는 자가 용이 되는 게 더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붕어·개구리·가재로 살기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해서 용이 되라는 게 차라리 솔직하다는 것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위선적이지는 않다.
장하성 주중 대사는 2018년 9월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라디오에 나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가 없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외쳤지만, 집값 폭등으로 집 없는 사람만 ‘벼락거지’로 만든 것은 대체 누구인가.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된 적도 없다. 차라리 어렵지만 도전할 사다리를 놔주겠다는 사람에게 청년층 지지가 몰리는 게 ‘이준석 현상’이라고 본다.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고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청년층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게 됐다. 기존 정규직 일자리는 노조와 연공제로 보호되고 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쌀 재난 국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봉급이 오르는 연공제가 세대와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증대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3.3배 수준인 신입사원 대비 30년 근속자의 연봉 격차를 2배 이하로 낮추고, 연공제 대신 일의 종류와 숙련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직무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게 그리 쉬운 일인가. 연공제의 혜택을 보는 40대에선 이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퇴직을 앞둔 세대는 추가적인 정년 연장을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청년층의 좋은 일자리 구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20대에겐 모든 게 불확실하다. 지금 나오는 능력주의는 기존 시스템을 깨는 망치 같은 도구일 뿐이다. 4·7 재·보선과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자신의 힘을 확인한 20대의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이를 해결 못 하면 극심한 세대·젠더·사회 갈등이 나타날 것이다. 월 수십만원 수준의 각종 지원금(혹은 기본소득)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노동시장 개혁과 임금체계 개편, 신산업 육성을 통해 청년층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내야 할 때다.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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