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사과의 어려움

2021. 6. 1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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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013년 만들어진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우리는 마포대교가 두 동강 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본다. 방송국에 전화를 건 테러범은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사고로 죽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구조를 요청했지만 마침 진행되던 국가 행사 때문에 구조되지 못했다. 그때 숨진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의 아들로 밝혀진 테러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간절하게 대통령의 사과를, 다만 그것만을 요구한다.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구라는 걸 누구나 안다. 아버지의 구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그의 사과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과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그것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문명화된 양식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그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에는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문명화된 인간들의 투쟁 방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이라고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전투에서 사과를 한다는 건 곧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밝히는 것인데, 그것은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고, 상대방의 비난을 허용하는 것이고,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비난의 창에 맞아 패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명적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사과하는 순간 자기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과할 수 없다. 사과하지 않으려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뻔뻔해야 하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로 사과받을, 혹은 사과를 요청하는 사람을 공격해야 한다. 누가 들어도 말이 되지 않는 궤변이 공격 무기로 자주 동원된다. 마땅히 해야 할 사과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는 철면피와 기만과 궤변과 적반하장의 세상이 된다.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한 사람일수록 사과하지 않는다. 쿤데라는 짧은 예화를 통해 이 사실을 지적한다. 길을 가다가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치는 경우 사과할 사람이 누구인지 쿤데라는 묻는다. 부딪친 데 더 큰 역할을 한 사람, 즉 잘못이 더 큰 사람이 사과한다는 법은 없다. “사실 둘 다 서로에게 부딪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서로 부딪친 사람이지. 그런데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부딪쳤다고, 그러니까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하면 또 즉각, 자발적으로 자기가 상대에게 부딪힌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대뜸 상대방을 비난하고 응징하려 드는 사람들도 있지.” 부딪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부딪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과한다. 자기가 부딪쳐놓고도 부딪쳤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딪혔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 사람은 왜 그럴까? 자기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설령 잘못했다 해도 그것을 지적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상정할 수 있다. 전자가 도덕적 우월론자라면 후자는 제왕이겠다. 둘 다 전 시대의 유물들인데, 안타깝게도 두 인물이 합쳐진 타입을 요즘도 본다. 자기에게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어떤 잘못도 지적받지 않을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명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잘못은 잘못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자기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자기는 세리나 불의한 자들과 같지 않다며 감사기도를 하는 바리새파 사람과 멀지 않다.

한때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캠페인이 절실한 것 같다.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남 탓만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험악한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58쪽)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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