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이문동..조용하지만 역동적인 동네

2021. 6. 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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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에서 동쪽으로 직진하면 시조사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회기역 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경희대학교, 직진하면 이문동이다. 이문동은 북쪽으로는 석관동, 동쪽은 중화동, 서쪽은 회기동, 남쪽은 휘경동과 맞닿아 있다.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데 청량리역 다음인 회기역과, 휘경역에서 이름을 바꾼 외대앞역이 있는 동네다.

(위)한국외국어대학교 노천극장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Hsl1002),(아래) 외대앞역 역명판 (사진 위키피디아ⓒLERK)

동네 이름인 ‘이문里門’은 조선 시대에 집도 지키고 치안을 담당하는 일종의 초소 같은 곳을 가리킨다. 대개 큰길에서 작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동네로 들어서는 입구에 설치했다. 이런 이문이 있던 곳이라 해서 동네 이름도 이문안, 이문골로 불리다 이문동이 되었다. 서울에는 이처럼 이문골로 불리던 동네가 여럿 있다. 중구 남대문로5가의 옛날 양동 근처, 용산구 후암동, 종로구 인사동, 공평동 근처와 성동구 성수동, 왕십리동 일대도 이문골이라 불렀다. 그 지역 역시 이문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문동의 상징은 이곳의 터줏대감이자 많은 유동 인구를 양산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1954년 종로2가에 영어과, 불어과, 중국어과 등을 개설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후 195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해 64년을 이문동과 함께했다. 당연하게도 이문동의 중심 지역은 지하철 외대앞역에서 외대 입구까지다. 길지 않은 이 지역에는 양쪽에 이른바 ‘먹자골목’이 있다. 이 골목에는 한창 먹성 좋은 학생들, 즉 외대생뿐 아니라 인근 경희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가득하다. 대개 단층이나 2, 3층의 키 작은 건물들이 나란히 들어선 이 먹자골목의 특징은 가게와 식당뿐 아니라 자취, 하숙, 원룸, 오피스텔도 유난히 눈에 띈다. 이문동에서는 이 지역에서 자취하는 학생을 이른바 ‘이무너’라고 부르는데, 학생뿐 아니라 중장년층 이무너도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문동에서 또 눈여겨볼 것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뒤편에 자리 잡은 천장산이다. 경희대학교에 연결된 이 산은 해발 140m의 낮은 산이지만, 불교 사찰의 입지 유형 가운데 가장 빼어난 명당터로 ‘하늘이 숨겨 놓은 곳’이라는 뜻이 산 이름이다. 산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경희대학교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터는 그 옛날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게 했던 무서운 곳’, 바로 중앙정보부 자리다. 이병헌이 열연했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실제 주인공들이 ‘활약(?)’했던 그 중앙정보부 말이다. 영화 제목인 남산에는 국내 정치와 대공 담당이, 그리고 이문동에는 해외 담당 청사가 있었다. 지금은 둘 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그저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문동은 조용하면서도 뭔가 계속 움직임이 있는 동네다. 젊고 역동적이고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성도 너그러운 동네다.

그런데 궁금한 한 가지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설렁탕집 ‘이문 설렁탕’은 어째서 이문동이 아니라 종로에 있는 걸까. 이 집의 시작은 1902년 혹은 1905년 등 몇몇 설이 있지만 아무튼 20세기 초입임은 분명하다. 요식업 허가 1호 기록을 보유한 집이니 그 역사가 무려 120년에 육박한다. 원래 이 집의 주인장은 홍 씨 성을 가진 이였다. 그가 50여 년을 운영하다 양 씨 성을 가진 이에게 넘기고, 양 사장이 1960년경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지금의 사장인 전성근 씨에게 가게를 넘겼다. 전성근 사장은 60년을 이어온 맛을 그대로 유지해 대를 이어 찾는 맛집으로 만들었다. 상호 역시 처음 사용하던 것을 유지해 ‘설렁탕’이 아니고 ‘설농탕’이다. 설에 따르면 이 집이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이 이문동 언저리라니, 동대문구 이문동과 전혀 상관없지는 않은 셈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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