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주도 리더십 벗어나 지역 기반 '풀뿌리 연합운동' 해볼만

장창일 2021. 6. 15. 03: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합기관, 이제는 하나 될 때다] <3> 연합운동의 한계
독일 하노버에 있는 독일개신교교회협의회(EKD) 본부 전경. 2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 건물은 지역에서 출발해 독일 전역 교회들이 한 데 모인 협의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EKD 홈페이지 캡쳐


전문가들은 교회연합기구가 제 역할을 감당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규모나 숫자만 앞세우는 교회연합기구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의 재도약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교회연합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자중지란 이후 비슷한 성격의 연합기구가 연이어 생긴 것도 교회연합기구의 역할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박종화 서울 경동교회 원로목사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개인 구원만을 위해서라면 교회연합운동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교회의 공적 신앙고백을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한 교회연합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공적 신앙고백이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과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걸 포함하는 개념이다. 박 목사는 “코로나19가 확산하는데 일부 교회가 무리하게 예배를 드렸던 일이 있었는데 이런 게 바로 공적 신앙고백이 부족했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며 “교회연합기구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교회의 공적 신앙고백을 위한 기구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교회연합기구가 교회의 이익만을 대변하려고 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기총 탈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한 교단 관계자는 “한기총이 대표회장 자리와 이단 회원권 문제로 싸우다 무너진 건 교권과 여러 정치세력이 한기총이라는 좁은 틈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생긴 결과”라면서 “교회연합기구가 사회와 정부를 향해 하나의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제대로 된 연합운동인지 고민하는 노력이 선결돼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연합기구가 지닌 본래 역할을 강화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라는 조언이다.

소수의 목회자가 참여하는 교회연합운동으로 자리잡다보니 지역 교회들이 참여할 길이 사라지는 것도 분명한 한계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의 A교회 B목사는 “한교총과 한교연이 뭘 줄인 말인지도 모르겠다”며 “교회연합기구가 목회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의 C교회 D목사도 “교회연합기구가 발표하는 성명서나 관계자들의 발언들이 과연 전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늘 의아하다”며 “교회연합기구라지만 지역 교회들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교회의 목소리를 대신 내 준다는 점에 있어서도 신뢰가 없다”고 밝혔다.

지역교회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유럽교회의 지역별 교회연합운동을 참고하라는 의견도 있다. 박 목사는 “대표적으로 독일교회는 지역 교회들이 교단을 뛰어넘어 공의회적 공동체를 구성한 뒤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 봉사하고 있다”며 “각자 속한 교단의 전통에 따라 신앙생활은 하되 봉사의 영역에서만 하나의 교회로 참여하는 걸 말한다”고 소개했다. 박 목사가 말하는 ‘공의회적 공동체’란 한 지역의 교회들이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함께 토의하고 결정하는 모임을 말한다.

박 목사는 “이들 지역 연합회가 모인 공동체가 독일개신교교회협의회(EKD)다. 풀뿌리 연합운동이 확대돼 이를 기반으로 전국 규모의 연합기구가 만들어진 경우”라고 설명했다. 독일 내 개신교단들이 참여해 1945년 창립한 EKD의 회원은 독일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2100여만명에 달한다. 지역과 전국 단위 교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경험이 없다. 기초공사 없이 교회연합기구라는 큰 우산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우리나라 교회연합기구는 200여개 이상의 교단으로 분열된 장로교단이 주축인 경우가 많다. 이미 분열을 경험한 교회들이 교회연합기구 아래 모인 것이다. 일부에서는 분열의 경험이 또 다른 분열을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병준 서울장신대 교수는 “우리나라 장로교가 분열할 때의 특징은 교권은 뒤에 감춰두고 신학적 차이만을 앞세우는 이중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라며 “이런 현상이 교회연합기구 분열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쇠퇴하는 시기가 되면 오히려 탐욕을 버리고 자기반성 운동이 벌어졌는데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지금이 바로 그럴 때”라면서 “기존 교권이 욕심을 내려놓은 뒤에는 사심 없이 교회연합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 생긴다고 본다”며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청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