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0조 '일대일로' vs 4경4640조 'B3W'.. 中-G7 머니게임
돈 조달 방법 안밝혀 실효성 의문
일대일로, 140개국서 협력 서명
낮은 수익성으로 '빚더미' 부작용
글로벌 인프라 구축을 둘러싼 미·중 경쟁의 막이 올랐다. 그동안 중국이 개발도상국 인프라 지원을 앞세워 경제적 영향력을 넓혀온 데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주요 7개국(G7) 정상이 13일(현지시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내놓은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 구상은 일단 투자 규모 면에서 중국을 압도한다. 그러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집행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지휘하에 국유은행과 기업이 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G7은 다르다. B3W 구상에 동참한 국가들이 앞으로도 단일대오를 유지할 것인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시 주석은 2013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공동 건설을 제안했다.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해상으로는 동남아에서 유럽과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는 구상이다. 미국은 이 둘을 합한 일대일로를 중국의 패권 전략으로 보고 있다.
14일 일대일로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월 말까지 140개국, 31개 국제기구와 총 250건의 일대일로 협력문서에 서명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이 해외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1조9822억 달러(약 2214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는 일대일로와 연계돼 추진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2600개가 넘고 금액으로 치면 3조7000억 달러(42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 이면엔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부채 함정(debt-trap)’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거액을 빌려 도로, 철도, 항만시설을 건설한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의 저개발 국가들이 낮은 수익성에 고전하다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는 수순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일대일로 참여국인 스리랑카와 잠비아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파키스탄, 탄자니아 등도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의 일대일로 협정 파기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 2월 “일대일로 협정이 호주에 가져올 이익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호주 빅토리아주 정부는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협정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빅토리아주는 2018년 10월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다는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는데 이후 대중무역 적자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국제기관의 원조를 받기 힘든 독재국가라도 가리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 또 자금 이용 내역에 대해선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차관을 무기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채함정 외교’를 펼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대일로 협력 국가에서 반중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B3W의 골자는 2035년까지 40조 달러(약 4경4640조원)를 투자해 중·저소득 국가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B3W는 더 나아가 기후변화, 공중보건, 디지털 기술, 평등·성평등 4개 분야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다. 대상 지역도 중국이 일대일로로 공들이고 있는 인도·태평양, 중남미, 아프리카 모두가 포함된다. G7은 B3W를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가치 중심적이고 높은 수준의 투명한 인프라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금액만 놓고 보면 B3W가 일대일로의 10배에 달한다.
하지만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우선 40조 달러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다.
일단 백악관은 “국제개발금융공사(DFC)와 국제개발처(USAID) 등 개발투자수단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개발투자수단을 늘리기 위해 의회와도 협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국내 인프라 투자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공화당에서 2조2500억 달러(약 2509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G7 내 온도차도 감지된다. 특히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압박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미 일대일로에 참여한 중·저소득 국가가 B3W로 넘어올지도 미지수다.
미국은 이전에도 일대일로 견제 구상을 발표했지만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2019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포럼을 열고 미국 일본 호주가 주도하는 ‘블루닷 네트워크(BDN)’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인프라 개발을 목표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투자와 교역을 늘리는 내용이었다.
중국은 당시 “아태 지역 국가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미래도 어둡다”고 평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일대일로 대항 비전을 공개했을 때 중국 관영 매체가 “미국은 그럴 돈도 의지도 없다”고 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을 복원하고 있고 유연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B3W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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