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오니까 억수로 좋네예, 단디 함 해볼랍니다"

박린 2021. 6. 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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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농구 부산 BNK 강아정
박정은 감독·변연하 코치와 동문
"부산에 네가 필요하다 말에 결심"
김한별도 합류, 다크호스 급부상
고향 팀 부산 BNK에 입단한 강아정(가운데). 고교 선배 박정은(왼쪽) 감독·변연하 코치와 힘을 합쳐 우승하는 꿈을 꾼다. 송봉근 기자


“고향에 오니까, 억수로 좋네예.”

여자 프로농구 부산 BNK 썸 강아정(32)을 최근 부산 기장의 부산은행 연수원에서 만났다. 그는 진한 부산 사투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2008년부터 14년간 청주 KB에서만 뛴 한국 여자농구의 대표 슈터다. 지난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계약 기간 3년, 연봉 총액 3억3000만원에 고향 팀인 BNK 유니폼을 입었다.

부산 태생인 강아정은 지역 농구 명문 동주여고를 졸업했다. 여고 선배이자 ‘레전드’인 BNK 박정은(44) 감독과 변연하(41) 코치가 기장의 한 횟집에서 그를 만나 고향 팀 이적을 설득했다. 그는 “BNK 국장님이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감독님과 코치님이 함께였다. 선배님들 얼굴을 보자마자 ‘가야겠다’고 직감했다. 그날 술로 녹다운됐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부산 농구가 위기다. 어린 선수 사이에서 중심도 잡아주고 승부처에서 한 방을 해줄 네가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코트에서 즐거워 보이지 않던데, 고향에서 잘 마무리하자”고 강아정을 설득했다. 강아정은 “내가 간다고 당장 우승 전력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줘 울컥했다. 감독님만 믿고 왔다”고 말했다.

여자 프로농구에서는 처음으로 고교 동문 선후배가 같은 팀 감독·코치·주장을 맡았다. 셋 다 키(1m 80㎝)도, 선수 때 포지션(포워드)도, 심지어 슛 폼(투 핸드)도 똑같다. 프로 15년 차 강아정은 박 감독과는 적으로, 변 코치와는 동료로 뛴 적이 있다.

강아정은 “신인 때 박 감독님 막다가 1분 만에 파울 3개를 했다. 그 시절 스타 선수였는데 같은 팀 어린 선수들을 잘 챙겼다. 변 코치님은 내가 고교생일 때 모교를 찾아와 슛도 가르쳐주고 그날 신은 농구화도 주고 갔다. 나중에 KB에서 같이 뛰는데, ‘슈터는 표정에 마음이 드러나면 안 된다. 10개를 못 넣어도 마지막은 꼭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14년간 부산을 떠나 표준어를 썼다는 강아정은 고향에 돌아오니 사투리가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강아정은 양쪽 발목 인대가 거의 없어 3년에 한번 꼴로 재건 수술을 받는다. 비 시즌에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시즌 준우승한 KB는 FA 강아정을 잡는 대신 슈터 강이슬(27)을 영입했다. 지난 시즌 3점 슛 부문에서 강이슬이 1위(2.46개), 강아정이 2위(2.04개)였다. 강아정도 긴 시간 몸담았던 KB를 떠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짐 빼러 KB 숙소(청주)에 갔는데, 구석구석 뭐가 많더라. 경비 아저씨가 ‘왜 갔냐’며 아쉬워하셨고, 팬들이 손편지도 써줬다. 울다가 짐을 싸다가 했다. 그래도 거동 불편한 엄마가 ‘부산이니까 자주 갈 수 있다’고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강아정은 인터뷰 당일 BNK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KB에서는 노랑과 분홍색 유니폼을 입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빨강이나 검정 같은 강한 컬러를 좋아한다”며 웃었다.

BNK는 강아정 외에도 지난 시즌 삼성생명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김한별(35)도 영입했다. 박 감독은 “남편(배우 한상진)이 ‘이제 됐어’라며 좋아했다”며 웃었다. 강아정은 “한별 언니가 ‘너나 나나, 전 소속팀에서 더 잘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텐데, 우리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박정은 감독 남편인 배우 한상진씨가 강아정에게 선물한 휴대폰 케이스. 강아정과 러블리를 합해 강블리라고 적혀있다. [사진 강아정]


지난 시즌 최하위(5승 25패) BNK는 단숨에 우승권 팀을 위협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강아정은 “빠르고 젊은 BNK는 초반에 잘하다가 막판에 무너졌다. 후배들을 심리적으로 뒷받침하겠다. 우리는 더 내려갈 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고 동창들은 전부 시집가서 애 낳고 이제는 나만 남았다. 여고 시절처럼 부산에 농구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끝 무렵 강아정에게 부산 사투리로 각오를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팀원들이랑 함께 단디함 해볼랍니다. 응원 마이 해주이소. 내 보러 경기장 올 거지예”라며 겸연쩍어하더니 결국 파안대소했다.

부산=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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