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지금 미국은] 치료·교육받을 권리 위해 싸우는 미국 젊은 운동가들
지구촌에서 가장 일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강력한 공격을 받은 곳이 미국 뉴욕이다. 지난해 4월 바이러스에 지배당한 뉴욕시는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뉴욕 중심부인 맨해튼의 돈다발을 움켜쥐고 있는 극소수의 부자들은 순식간에 도시를 빠져나갔다. 바이러스는 대책 없이 갈팡질팡하는 수많은 막노동 일일 노동자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감염병에 죽어간 시체 더미를 수거하는 냉동 트럭들이 맨해튼 곳곳에 즐비했다. 세계의 도시 맨해튼 풍경이었다. 감염병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는 만큼 비인간적 빈곤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감춰져 보이지 않았던 야만적인 인간 사회다. 시민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보다 빈곤의 격차에서 오는 분노와 증오에 몸서리를 쳤다.
감염병 사태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치권에 동의할 수 없다는 움직임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불어났다. 이들은 선거운동에 열을 올린 민주당을 주 타깃으로 전체 정치적 스펙트럼과 관련해 서민의 생존권을 목표로 했다. 젊은 운동가들이 정의민주주의(Justice Democrates)라고 불리는 작은 단체에 모여들었다. 밀레니엄세대인 20, 30대들이다.
2년 전인 2018년 중간선거전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운동 전략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20대 여성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OC)를 내세워서 전국 민주당 서열 3위인 거물 조 크롤리를 뉴욕주 연방하원의원 당내 예비경선에서 패퇴시켰다. 국가대표 선수를 지역 예선전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감염병의 공포 속에서도 이들은 2020년 선거의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뉴욕 북부인 브롱크스 지역을 택했다. 1988년 선출된 이후 심각한 도전자 없이 민주당이란 모자 덕분에 30여년을 하원의원에 내리 당선된 73세의 유대계 거물인 엘리엇 엥겔을 목표물로 설정했다. 엥겔은 민주당 내 중도우파로 진보 지역구에서 수많은 기업의 기부금을 받는 정치인이다.
AOC를 내세웠던 운동가들은 그 지역구의 흑인 생활 문제와 환경정의 운동가로 알려진 40대의 흑인 중학교 교장인 자말 보먼으로 하여금 도전장을 내밀게 했다. 캠페인에서 보먼은 아예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외쳤다. “나는 미국에서 흑인 교육자다. 그런데 내 정책이 사회주의자 정책과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결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16선의 거물 엥겔이 당내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유대계들이 동원됐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현직 거물들이 엥겔을 구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5% 이상의 차이를 벌리면서 보먼이 이겼다. 밀레니엄세대 정치 운동의 위력이다.
선거에서 젊은 운동가들의 목표는 민주당의 정책을 좌익 쪽으로 한껏 끌어당기는 것이다. 핵심은 서민들의 치료받을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편화시키는 일이다. 이처럼 작지만 강력한 전략으로 밀고 나가는 밀레니엄세대의 단체들이 또 있다. ‘선 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Data for Progress)’ ‘뉴 컨센서스(New Consensus)’ ‘유나이티드 위 드림(United We Dream)’ ‘모멘텀(Momentum)’ 같은 단체들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팔팔한 혁신적인 단체다.
이들 단체의 우선 목표는 민주당이다. 밀레니엄세대들은 상대편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혁신적이지 못한 자기 진영 중도보수의 거물들을 탈락시키는 충격 전략이다. 지난해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자신들이 정한 후보들을 내세웠다. 다선의 정치 거물들을 상대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10선의 거물을 꺾고 당선된 40대 흑인 간호사 코리 부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0여명이 있다. 잘 알려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녹 다운 더 하우스(Knock Down the House)’에 나오는 인물들이 바로 이들이고, 이들은 지난해 ‘흑인도 생명이다’라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이 제안하는 정책은 ‘그린 뉴딜’의 핵심을 이룬다. 빈곤, 환경, 인종정의로 요약된다.
불과 5년 전인 2016년 대선전엔 아무도 그린 뉴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입법 의제는 그린 뉴딜이다. 진보적인 밀레니엄세대들이 진보계의 거물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의 핵심 세력이 됐고 샌더스로 대변되는 진보 정책은 온건한 중도우파인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적인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바이든의 중도적 온건함은 상대적이다.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로 확실해진 후 그는 경제, 기후 그리고 인종정의와 관련된 통합 태스크포스를 결성했다. 여기서 나온 정책이 그린 뉴딜이다. 그린 뉴딜이 미국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에는 민주당 내 이견이 없다.
양극화의 격렬함에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현장의 저변엔 바람이 분다. 내년도 중간선거를 앞둔 어정쩡한 중도주의의 중진 의원들이 낙선의 불안감에 떨고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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