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대통령도 속성재배하는 나라

2021. 6. 1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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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에 구창모라는 젊은 투수가 있다. 그는 지난해 15경기에 등판해 9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했다.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시즌 도중 팔이 아팠다. 깜짝 놀라 당장 쉬었다. 그래도 회복이 느려 올해는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구단이 미래의 ‘국대 에이스’를 위해 세심하게 몸 관리를 해 왔던 터라 아쉬움이 더 크다. 어느 팀이든 귀한 선수는 소중하게 대접한다. 당장 승리를 위해 무리하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이 철칙을 한국정치는 외면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는 전당대회 직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심지어 현직 최재형 감사원장까지 “대권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정계 진출을 유혹했다.

윤 전 총장은 권력에 맞서 불퇴전의 용기를 보여줬다. 그런 강단과 뚝심은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 점에서는 최 원장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전방위 압박에도 어떻게 그처럼 소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안 간다. 김 전 부총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경제 분야 실력자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전형이다. 모두 국민이 아끼고 귀하게 대접해야 할 재목들이다. 한 분야에서 이름을 내고 일가를 이루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곳곳에 그런 ‘선수’들이 차고 넘쳐야 국가가 발전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치권 바깥의 국가대표급 인재를 다 끌어들이려 한다. 야당으로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많이 모일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 인사 영입에 사활을 거는 것이 과연 국민의힘에 순기능만 할 것인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검찰총장, 감사원장, 경제부총리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해서 정치도 똑같이 잘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유가 과할지 몰라도, 그것은 마치 발레에서 성공한 인사가 격투기에서도 챔피언이 되리라고 믿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세 사람 모두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왔다. 한국사회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갑’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정치에 발을 디디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역정과는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들이 불과 몇 달 만에 뚝딱 프로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국민을 받드는 민주적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꿈만 같은 이야기다. ‘압축 근대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치 지도자 속성재배는 언감생심이다.

플라톤은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철인왕을 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도자의 싹이 보이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각종 교육을 받게 했다. 추리고 추려 엄선된 후보자들은 35세부터 무려 15년이나 더 실무훈련을 이수해야 한다.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지 않게 자기 단속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정치에 나서게 했다. 천하의 플라톤도 정치를 그만큼 어렵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도지사, 장관 등 정치 경력을 쌓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이 모양 이 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버티지 못하는 것이 현실 정치판이다.

혹자는 문재인 정권의 연속을 저지하는 것 이상 더 중요한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이 밉다고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문재인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대안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한국의 선거는 구도에 의해 좌우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가 그것을 증명한다. 문재인 정권은 인심을 잃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의힘이 진심으로 준비하면 가능성이 있다. 꼼수로는 이길 것도 못 이긴다.

감자 농사를 계속하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감자는 남겨 둬야 한다. 한국정치가 위기의 순간이라 해도 나라의 동량들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일단 정치계에 불러들이면 그 그릇에 맞게 잘 단련해서 크게 써야 한다. 국민의힘은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정치적 자산이 부족한 젊은 당대표와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외부 영입 인사가 합작하는 기묘한 2중주로 과연 그 길을 열 수 있을까. 정치는 순리로 해야 한다. 씨감자 빼먹는 조급하고 무책임한 정당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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