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년 인류의 행성 적응기.. 성찰의 시간과 마주하다

손영옥 2021. 6. 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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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호모 사피엔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호모 사피엔스’전은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다른 생물종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화석 자료, 고고 자료 등 700여점의 전시품과 영상으로 풀어냈다. 특히 인류가 매머드, 곰, 고릴라 등 여러 생물종과 호숫가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시각화한 실감형 콘텐츠는 포토 존으로 인기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나무에서 툭 뛰어내리는 형체에 놀라게 된다. 네발을 사용하던 인간이 이내 곧추서 두 발로 걷더니 바로 화면이 바뀐다. 그러곤 길쭉한 돌에 하나둘 눈금이 새겨지는데….

고고학 전시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이라는 혁명적 사건을 3D모션 캡처 촬영 기법으로 제작한 실감형 영상으로 이렇듯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돌도끼, 청동거울 등을 시대별, 종류별로 나열할 거라는 통념을 깨고 실물과 영상이 상호작용해 시너지를 낸다. 무엇보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다른 생물종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성찰하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호모 사피엔스’전 이야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인류 옛 조상의 용모와 덩치를 망라해 보여주는 28종의 원시 인류 인골 화석들이 설치미술처럼 도열해 있다. 700만년 전 최초의 사람 조상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를 필두로 1974년 발굴 당시 ‘루시’로 불리며 인류가 320만년 전 직립보행하기 시작한 증거로 공인된 아프리카 동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현생 인류 직계 조상으로 10만∼7만년 전 나타난 네안데르탈인 등을 만나게 된다. 이들 고인류 인골 화석은 극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인류가 700만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표범에게 공격당한 파란트로푸스 두개골.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져 고고학에 대한 구미를 돋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발생한 고인류학 최대 사기인 필트다운인 화석 발견 사건(1915) 등이 그렇다. 표범에게 공격당한 파란트로푸스 두개골은 동물을 사냥하는 인간이 한때는 동물의 사냥감 신세였던 긴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전시만 꼼꼼히 살펴도 고고학 세계의 베일이 활짝 젖혀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토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의 백미는 2부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다. 현생 인류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허구를 믿는 힘’이다. 그 능력이 가장 잘 발현된 시기가 후기 구석기시대인 4만년 전부터다. 이때부터 시작한 인류 문명의 특성을 ‘예술’ ‘장례’ ‘도구’ ‘언어와 기호’ ‘탐험’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살펴본다. 예술 코너에서는 인류가 남긴 여러 종류의 조각상을 실물 크기 복제품으로 볼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으로 알려진, 4만∼3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사자인간’은 독일 남쪽 홀레펠스 동굴에서 발견됐다. 머리는 사자, 몸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 강력한 동물의 힘을 동경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마음이 읽힌다. 풍만한 가슴을 한 ‘묄렌로르프의 비너스’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다산의 상징인데, 이것 말고도 독일 ‘홀레펠스의 비너스’, 프랑스의 ‘브라상푸이 비너스’와 ‘레스퓌그 비너스’, 러시아의 ‘코스텐키 비너스’와 ‘말타 비너스’ 등 유럽 각지에서 발견된 비너스상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장례 문화는 인간성이 발현된 산물이다. 인류의 무덤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 이스라엘 카프제, ‘어린왕자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있는 이탈리아 아렌 캉디드 등 여러 무덤의 모습을 3D스캔으로 재현했다. 아렌 캉디드 동굴 무덤은 2만년 전 무렵에 만든 키 170㎝, 나이 12∼14세 정도의 호모 사피엔스 청소년 무덤인데 시신을 조가비 모자, 팔찌 등 다양한 부장품과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 멋진 별칭을 얻었다.

단양 수양개 출토 눈금이 새겨진 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언어와 기호 코너에서는 전시장 들머리에서 영상으로 보여준 ‘눈금 새겨진 돌’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충북 단양 수양개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구석기 시대의 눈금 새긴 돌이 나온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 돌은 4만년 전, 한반도의 조상이 사냥한 동물의 숫자나 종족의 인원수, 날짜 등을 세던 원시적인 측정도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구 코너에서는 돌도끼, 돌칼 등이 감초처럼 나오지만 유럽에서 건너온 후기 구석기시대 손잡이 달린 돌칼 등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300만여년에 걸친 석기 제작 발전 단계를 체계적으로 시각화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시가 가장 빛나는 대목은 실감형 콘텐츠다. 음악과 은하수가 흐르는 호숫가에 인간뿐 아니라 거대한 매머드 곰 코뿔소 고릴라 침팬지 등이 어울려 산다. 코로나 팬데믹은 대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이 여전히 미약한 존재임을 확인시켰다. 포토존이 된 이 실감형 콘텐츠에서 관람객들은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생명과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9월 26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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