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육아' 때문에.. 오늘도 출근길에 택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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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기자]
"여보 침대 팔렸어요. 깨끗하게 소독하고 분해해서 여기 기저귀 갈이대랑 관련 물품들이랑 담아서 1시에 마트 앞에서 직거래 좀 부탁해요. 만나서 좀 잘 전달해줘요."
'아 나 2시에 줌 회의 있는데.'
회의 준비를 막 마치고 나왔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한 5개월 차부터 마음껏 뒤집을 수 있는 매트 위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아이 침대가 한쪽에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는데 드디어 팔렸나 보다. 자리를 떡 하고 많이 차지하던 물건이라 앓던 이가 빠진 듯 속 시원하면서도 꼭 주말까지 이래야 하나라는 허망감과 짜증이 밀려왔다.
코로나로 생긴 휴일의 줌 화상회의도 못마땅한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거래되었다는데... 게다가 직거래 약속까지 잡으셨다는데 싫고 좋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 시간 11시. 시간이 촉박했다.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침대와 그 부자재를 청소, 소독, 분해, 정돈해서 큰 투명 봉투에까지 아기 엄마한테 확인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고된 노동이었다. 아기 엄마는 꼼꼼히도 작업을 지휘했기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려니 속으로 생각하며 포장까지 마쳤다.
철재 재질의 침대였기에 그 무게도 상당했다. 처음 들었던 조그마한 짜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짜증을 달래며 아기 침대를 들고 직거래 장소로 향했다. 시간도 참 좋지 않나? 제일 햇볕이 뜨거운 오후 두 시 아닌가? 직거래 장소에는 남자 한 분이 SUV 트렁크를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십 번의 직거래 경험이 쌓여 이제는 구매자를 잘 알아보는 능력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혹시 침대 사러 오셨나요?"
"네 맞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지요?"
"어휴. 이거 생각보다 큰건 물론이고 꽤 무거운데요?"
▲ 필요없어진 침대를 팔았는데.... 5천원이라니. 사진 속 침대는 아닙니다. |
ⓒ elements.envato |
코로나19로 아이를 집에서 보살펴야 하니 아이 엄마는 더 열심히 저렴한 육아템을 찾는다고... 그만큼 더 다양하게 아이 용품을 구비하고 싶어 해서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남자는 더 힘이 든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동질감이 들었고 위로의 악수를 하였다.
"우리 힘 내서 잘 이겨내고 아이 잘 키워 봅시다."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헤어지려는데 그가 5000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물건을 싣는 것을 도와주고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돈을 받았다.
"아이 엄마가 돈을 드리라고 하더라고요 잘 쓰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 인사를 하고 보니 아뿔싸 '뭐 5000원?' 내가 바쁜 아침에 닦고 소독하고 분해하고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여기까지 가져왔는데 이렇게 크고 무거운데 오천 원이라니?
'세상에 이 더운 날에 회의까지 쫒겨 급한 마음으로 정성껏 작업했는데 오천 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놀라고 황당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헐레벌떡 물었다.
"여보 돈 잘못 받은 거 아니지요? 아니 오천 원을 주던데 뭐 잘못된 거죠?"
"아니 맞아요. 제가 그렇게 올렸어요."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아기 침대라서 더욱더 깨끗하고 청결히 썼지 않는가? 아니 내 인건비도 있고 아내는 시트 세탁 후 건조까지 해뒀는데 저렇게 크고 무거운 오천 원짜리라니...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지금까지 중고거래를 하면서 생각한 것이 많았단다.
택배가 힘든 물건을 보내 달라 부탁하면 우걱우걱 보내주시기도 했고, 정말 필요할 때 싸게 구매했던 좋은 기억, 그리고 가격을 떠나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고마움을 다시 전달하고 베풀고 싶었다는 것이다.
▲ 판매한 내역들 중 일부 |
ⓒ 최원석 |
아기용품들은 무료 나눔도 많기에 처음에는 무료나눔으로 나누려고 했으나 무게와 부피가 있는 상품이라 혹시 계약이 불발되거나 구매자가 잠적하는 등 무책임한 구매자를 최대한 걸러서 판매하려고 5000원에 올린 거란다. 아이가 커서 침대도 이미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 처분하는 것이고 구매자는 지금 딱 이 침대가 필요할 때니까 좋은 일 한다는 마음으로 판매했단다.
▲ 판매되었던 내역의 일부 |
ⓒ 최원석 |
"여보, 다 엄마들이라서 정말 서로를 조심히 대하는데요. 가격을 고심해서 올려서 그런지 가격을 깎으려는 사람들이 없어요. 답장이 서로 바로 오지 않아도 이해하고 택배 거래가 되지 않아도, 제때 배송이나 입금이 되지 않아도 서로 웃으며 기다려줘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아내가 주고받은 채팅방에는 거래가 목적이 아닌 것처럼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비슷한 시기의 아이 엄마들과 육아템을 함께 궁리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내용이 많았다.
내가 겪었던 중고 거래에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내가 아는 중고거래는 가격을 후려치듯 제시하고 예절 없는 일색의 사람들이 많았다. 답장을 바로바로 해 주지 않으면 시비가 되기도 하고 설령 거래가 되어 거래해도 꼬투리를 잡아서 환불이나 일부 할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약속을 어기거나 잠적을 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돈을 받고 택배를 늦게 부치거나 제품을 막상 받아보면 사진과 다르거나 최소한의 관리도 하지 않은 채 택배를 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내의 중고 거래는 특별한 거래다. 아내 말처럼 서로를 생각해서 최소한이 아니라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하는 거래다.
"여보 이것 좀 부쳐 주세요. 신기하게 어머니 고향인 고흥에서 시켰네요."
"아기 엄마가 빨리 받을 수 있게 출근 전에 부탁해요."
"안에 내용물이 뭔데요?"
"지금 딱 쓰기 좋을 거예요. 어린 아기들 목욕할 때 물 들어 가지 말라고 쓰는 모자요."
비로소 코로나 시대 '집콕육아'(아기와의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육아를 소화하는 상황을 말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육아템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중고 거래나 택배는 일상이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출근길에 택배를 보냈다. 아이 엄마는 물건을 씻고 포장하고도 뽁뽁이를 넉넉히 감아 넣었다. 거기에 잘 쓰시라는 메모와 작은 과자는 서비스로 넣었다.아마 장사라면 이렇게 하다 딱 망하지 싶을 만한 거래다.
아기 엄마들은 오늘도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거래한다. 단순히 아이가 쓰다 남은 상품이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마음을 담는다. 그렇게 오늘도 코로나 세대 아기엄마들은 진심을 담은 정성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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