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제대로 버리기..이렇게 어렵다니 [에코노트]

박상은 2021. 6.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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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왕국' 유튜브 채널 캡처

화장품을 살 때 ‘버리는 방법’까지 고려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어떤 성분이 들어있거나 어떤 효과가 있다는 얘기는 큼직하게 써 붙여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업은 거의 없으니까요. 스킨, 로션, 크림, 에센스, 파운데이션, 립스틱, 아이브로우, 마스카라…. 종류도 크기도 재질도 다양한 화장품. 다 쓴 용기들은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픽사베이

화장품 버리기의 기본은 ‘내용물 비우기’입니다. 뷰티 유튜버들은 보통 내용물을 흔들어서 빼내고, 휴지나 면봉으로 내부를 닦아내라고 안내합니다. 일부 화장품 성분은 하수도로 흘러 들어갔을 때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어서 최대한 휴지나 신문지에 흡수시켜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화장품 용기 입구가 대체로 작다 보니 이 작업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색조 화장품은 클렌징 제품을 이용해도 잔여물이 남기 일쑤고, 팩트처럼 용기 구조가 복잡해서 분리가 안 되는 디자인도 많죠.

조그마한 화장품 용기를 들고 씨름하다 보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한가득 쌓인 휴지와 면봉, 세척하면서 흘려보내는 화학 물질을 생각하면 ‘이러다 환경을 더 오염시키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들고요. 사는 건 쉬운데 버리기는 어려운 물건 1등이 화장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장품 분리배출을 위해 내용물을 비우는 모습. '쓰레기 왕국' 유튜브 채널 캡처

고생 끝에 내용물을 비웠다면 이제 분리배출 해야 합니다. 뚜껑과 몸통을 분리하고 재질별로 모아서 배출하면 되는데, 선별장에서 사람이 손으로 골라낼 수 없는 너무 작은 부품(샘플 화장품 용기 등)이나 스포이트·펌프 뚜껑처럼 여러 재질이 섞여 있는 경우에는 일반 쓰레기로 버려줍니다.

그런데 화장품은 지난주 [에코노트]에서 다뤘던 OTHER 재질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분리배출 표시가 있어도 실제로 재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PET(페트), HDPE, LDPE, PP, PS라고 쓰여 있는 화장품 용기는 단일 재질이라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외 OTHER나 유리병은 분리배출하더라도 선별장에서 대부분 쓰레기로 처리됩니다. ‘실제 재활용이 되는지’ 따져보면 화장품은 대부분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합니다.

(유리병은 왜 안되냐고요? 색깔이 있거나 사기·플라스틱 등 다른 재질이 섞여 있는 디자인이 많거든요. 유리는 재활용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고 엄격합니다.)

그런데 잠깐. OTHER 기사에서 설명했듯이 생산자가 내는 재활용 분담금은 소비자 가격에 포함되어 있지요. 소비자는 이미 재활용을 위해 비용을 지불했는데, 재질을 따지고 분리배출 방법까지 고민해야 하는 부당한 상황입니다.

소비자가 ‘어차피 재활용 안 될 텐데…’라는 생각으로 분리배출 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더욱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기업이 자체적으로 화장품 공병을 수거해 재사용하는 ‘역회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주병이나 맥주병처럼 보증금을 걸어서 회수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요.

최근에는 화장품을 필요한 만큼만 덜어가는 ‘리필’ 상점을 운영하거나 생분해성 플라스틱·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용기를 만드는 기업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의 역할은 지금처럼 꼼꼼하게 분리배출하고, 구입단계부터 재사용·재활용에 힘쓰는 기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90만 유튜브 채널 '디렉터파이'에 출연해 화장품 분리배출 방법을 설명하는 모습. 홍 소장은 "화장품 용기만 모아서 재활용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9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환경부는 ‘화장품 포장재 재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화장품 산업에 맞는 별도의 재활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와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샘플 화장품 생산을 제한해야 한다’ ‘의무적으로 역회수망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했습니다.

반면 환경부 관계자는 EPR 제도를 손보기보다 기업이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에 ‘재활용 어려움’ 문구를 표시하도록 하는 재활용 용이성 등급 표시제 등을 예로 들면서요.

내년부터 생산되는 국내 화장품 중 70~90%가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K뷰티’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의 현실입니다. 소비자는 ‘재활용 달인’이 되어갈수록 자신의 실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겠지요. 하루라도 빨리 정부 정책의 초점이 기업이 아니라 환경과 윤리적 소비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맞춰지길 바라봅니다.

‘환경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매일 들어도 헷갈리는 환경 이슈, 지구를 지키는 착한 소비 노하우를 [에코노트]에서 풀어드립니다. 환경과 관련된 생활 속 궁금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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