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한 달을 살아본 사람들
[배지영 기자]
지난해 10월 8일, 시공사 강경선 편집자가 보낸 메일을 받았다. 그는 내가 처음 펴낸 <우리, 독립청춘>부터 읽은 독자라고도 했다. 소도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400쪽짜리 책을 완독한 정성에 감동했다. 강경선 편집자의 본론은 출간 제안이었다. 휴가로는 어림없을 것 같은 긴 시간을 뚝 떼어내어 국내에서 한 달 살기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
"인터뷰 글은, 작가님이 국내에서 제일 잘 쓰실 거예요."
▲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겉표지 |
ⓒ 시공사 |
왜 하필 그곳으로 떠나야 했는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숙소는 어떻게 구했는지를 묻기로 했다. 좋아하는 장소와 시간대, 외로움이 몰려들 때나 실망스러운 일을 겪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덤덤한 일상이 되지 않게 해주는 '여행자다운 감탄', 한 달을 살면서 어떤 것을 보며 "좋다! 진짜 좋다!"고 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강경선 편집자가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섰다. 맙소사! 군산역 안에서 서해로 지는 해가 고스란히 보였다. 마치 여행 온 사람처럼 감탄했다. 서둘러서 일몰을 더 잘 볼 수 있는 하굿둑으로 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게 물든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여운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사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서 있었다. 인터뷰이들에게 할 질문도 떠올랐다.
"한 달 살기 하는 동안 일몰이나 일출을 몇 번이나 보셨나요?"
▲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절영해안도로에서 본 일몰 |
ⓒ 박혜린 |
되도록 다양한 연령대의 인터뷰이를 만나고 싶었다. 전국 곳곳에서 '여행을 생활 같이', '생활을 여행 같이' 했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은 수도권에 사니까, 그곳에 사는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에게 혹시 한 달 살기 했던 이들을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만 본 것 같다"고 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책에서 찾았다. <연희동 편집자의 강릉 한 달 살기>를 쓴 출판사 대표 안유정씨. 그는 숙소와 공유 오피스를 제공해주는 강원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0년 5월에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서울에서 하던 일을 '파도 살롱'이라는 공유 오피스로 가져갔다. 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때는 높게 치는 파도를 보면서 일하는 게 좋아 안목 해변, 사천 해변, 순긋 해변, 사근진 해변의 카페로 출근했다.
유정씨는 강릉이 마음에 꼭 들었다. 서울보다 싼 물가, 맛있는 식당,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광활한 바다, 말이 잘 통하는 '파도 살롱' 사람들. 서울처럼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유정씨도 일찍 퇴근했다. 숙소에서 밥을 지어 먹고 느긋한 밤을 보냈다. 때로는 사근진 해변으로 가서 혼자 서핑을 하고 맥주를 마셨다. 한 달만 살고 짐을 싸는 건 너무 아쉬워 강릉에서 두 달 살고 서울로 돌아갔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차갑고 하늘이 칙칙해 보이는 11월 말, 나는 수원에 갔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현씨를 만났다. 그는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도, 지리산,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현이씨에게 아이들은 아침마다 "엄마, 오늘 우리 뭐해?"라고 물었다. 물놀이라도 실컷 하면 아이들이 덜 심심해할 것 같아 외가 같은 지리산의 민박집에서 살고 왔다.
▲ 인터뷰이 김현씨가 기차에서 먹으라고 싸준 먹을거리.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열차 안에서는 취식 금지였다. |
ⓒ 배지영 |
인터뷰 글은 인생과 같았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잘 풀리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 대학입시 뒷바라지 끝내고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았던 이은영씨를 만나러 가는 날, 폭설이 내렸다. 3개월 무급휴가를 받은 남편과 한 달 살기를 했던 박정선씨는 인터뷰 당일 아침에 갑자기 휘청거렸다. 이석증이라서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전국의 카페 테이블은 치워졌고, 나는 인터뷰이의 집으로 가서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 직장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았던 김경래씨는 좋은 아빠, 다정한 남편이 되기 위해 아들 동해랑 단둘이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
ⓒ 시공사 |
그래도 인터뷰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최선, 일산 가는 버스를 탔다. 경래씨와 얼굴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은 덕분에 알게 된 게 있었다. 나이키 마니아였던 그는 한정판 운동화를 팔아서 속초 한 달 살기 비용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게 떠났기에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한달살기... 저도 곧 가보렵니다
인터뷰이들은 강릉, 속초, 지리산, 군산, 아산, 완주, 부산,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부부가, 아빠가 아들 데리고, 엄마가 남매 데리고, 혼자서, 또는 반려견들과 함께 많이 걷고, 책을 읽고, 현지인들을 사귀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가이드로 변신했다. 한 달 살기 비용도 각자 상황에 맞게 30만 원(지자체 지원프로그램)에서 500만 원(주2회 골프 라운딩) 안팎으로 썼다.
집과 동네를 좋아하는 나도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를 쓰는 동안 다른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었다. 스무 살 봄에 떠나온 전남 영광,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도서관과 서점이 있는 충남 당진, 한 달 살기의 '원픽'으로 꼽는 제주도.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가 자기도 데려가라고 조르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언젠가는 낯선 도시에서 한두 달 살겠다는 야망만은 그대로이다.
책을 펴내고 첫 번째로 좋은 순간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실물 책이 도착할 때. 흡! 숨을 들이마시며 새 책 냄새를 맡아보고 촤르르 넘겨보고 사진을 찍는다. 그다음부터는 출판사 편집자도, 마케터도, 저자도 중쇄를 향해 간다. 나는 매일 아침 독자들이 모이는 한길문고 쪽으로 큰절을 한다.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와이파이 공유기에도 고개를 숙인다.
"작가님, 책 사러 왔는데 언제 오시나요?"
5월 28일 정오, 군산 한길문고에 입고된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를 사러 온 첫 번째 독자는 우리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었다. 남편과 한 달 살기 하는 게 로망이라고 했다. 같이 온 김순정씨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고 싶다는 대학생 딸에게 책을 선물할 거라고 했다. 그날 온 독자들은 울릉도, 제주도, 강릉, 부산, 서울, 시골 어디, 뉴질랜드 등에서 한 달 살고 싶다며 사인을 받아갔다.
▲ 군산 한길문고에 입고된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
ⓒ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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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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