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냥하는 인간들.. 이 영화가 말하는 '백인'

김규종 2021. 6. 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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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얼굴 없는 학살자, 포터를 찾아서!

[김규종 기자]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포스터
ⓒ 시네마 뉴원/대성필름
 
관객이 들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그것도 조조할인 혜택을 받으며, 혼자서 커다란 영화관 공간을 독점하는 즐거움은 누려본 사람만 아는 특권 아닐까. 코로나 19로 영화관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데, 나는 외려 예년보다 출입 빈도가 잦아졌다. 무례하거나 시끄러운 관객이 없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맙고 흔쾌한 일인가!

낯선 제목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영화 원제는 에스파냐어로 < Blanco en Blanco >이며, 영어 제목으로는 < White on White >다. 우리말로 옮기면 <흰색 위에 흰색> 정도 아닐까. 영화를 해설하는 글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새하얗고 순수한 (White) 땅을 백인(White)들이 짓밟는 불편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유럽과 미국에서 횡행하는 유색인종을 향한 백인들의 폭력을 마주하면서 역사가 횡보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우울하다. 불과 500년 전에 만들어진 '선진서양 후진동양'의 도식이 지식과 정보의 21세기에도 작동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그런 불편함을 전제하면서 영화를 들여다보면 조금은 위로받을지 모르겠다.

사진작가 페드로 사라를 찍다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진 단단한 체구의 사내. 서두르는 기색이나 어설픈 동작 없이 단정한 움직임의 사나이. 중년을 지나 초로의 나이로 접어든 단아한 인상의 사내. 2019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오리종티 감독상을 받은 에스파냐의 테오 코트 감독의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의 주인공 페드로다. 페드로는 전문적인 사진작가다.

그가 파타고니아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티에라 델 푸에고에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영화는 그 시점 어느 날에 시작하여 끝난다. 코트 감독은 영화의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행위가 정해진 시공간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따른 것이다. 따라서 시공간을 엄밀하게 추적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페드로는 포터의 하녀 아우로라가 데려온 어린 신부 사라의 사진을 찍는다. 여리지만 당돌한 눈매와 맑고 청순한 얼굴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사라. 그는 사라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대상으로 예술사진을 찍고자 한다. 20세기 판 <올랭피아>를 사진으로 구현하는 페드로. 그는 사진의 대가(代價)로 호된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가 흐느끼듯 말한다.

"날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페드로의 사진과 티에라 델 푸에고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스틸 컷
ⓒ 시네마 뉴원/대성필름
 
영화의 화면과 음악은 절제되고 정제된 색감과 음향으로 고요하고 정갈하다. 순백의 설원과 고원지대의 몰아치는 바람과 휘달리는 구름과 이리저리 떠밀리는 덤불과 작은 관목의 무리가 화면을 채운다. 거기 작은 남자 페드로가 수동식 사진기를 세우고 가림막을 뒤집어쓰고 사진기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진 속의 인물들.

횃불을 든 백인 여성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두 인디오 처녀와 오른쪽에 인디오 여성 하나. 동녘에 떠오르는 미명이 그들의 행로를 비춘다. 다음 사진에는 장총을 휴대하거나 도끼를 든 다섯의 건장한 백인 사내가 횃불을 들고 앉거나 서 있다. 그들의 자세는 영락없는 사냥꾼들이다. 작은 키에 커다란 머리의 인디오 원주민 사내까지.

1만3천 년 전 얼어붙은 베링육교를 지나 인류는 알래스카에 이른다. 1천 년의 중단 없는 전진으로 인류는 아메리카 최남단의 섬 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른다. 19세기 후반 칠레에 나돈 '엘도라도' 헛소문으로 유럽인들이 티에라 델 푸에고로 대거 이주함으로써 원주민인 셀크남족과 야간족이 속절없이 집단 학살을 당하기에 이른다.

포터의 하수인들과 페드로

영화 첫 머리부터 마지막까지 포터는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볼 수 없다. 각본을 쓴 테오 코트와 사무엘 델가도의 노련함 덕분이다.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하면서 동시에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소아성애자 포터. 티에라 델 푸에고의 실권자이자 최고 권력자 포터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존에게서 단서를 찾아보자.

"이제 자네는 우리 일꾼들의 사진을 찍게. 기록하고 싶네.
우린 여기서 역사를 만들고, 조국을 건설하고 있으니까."

포터의 생각에 따르면, 이곳 원주민인 셀크남족과 야간족은 문명과 기독교를 모르는 야만인이기에 그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교화할 대상도,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도 아니다. 남미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원주민들을 학살한 피사로와 코르테스처럼 포터와 그의 하수인들은 티에라 델 푸에고의 원주민들을 사냥감으로 생각한다.

존은 포터의 결혼식 잔칫날에 포터를 대신해 인디오 여자들을 데려온다. 그들의 자연성을 유럽의 인위성으로 유린(蹂躪)하는 사내들. 극심한 추위를 막는 양털 옷을 강제로 벗겨내고 유럽의 옷을 입게 하는 사내. 술과 음악으로 떠들썩한 술판을 만들고 인디오 여성들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고 즐거워하는 하얀 피부의 약탈자들.

페드로가 횃불 속에서 난감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을 만져보라는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는 페드로. 사진작가 페드로의 더운 양심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고자 하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도 살아남아야 하는 각박한 현실에서도 생명의 존귀함과 가치를 지켜내려는 페드로의 의지는 숭고하고 아름답다.

페드로, 너마저?!
  
 영화 <화이트 온 화이트> 스틸 컷
ⓒ 시네마 뉴원/대성필름
 
그들이 원주민 인디오 사내를 앞세우고 무리 지어 인간사냥에 나선다. 그들 사이에 기록자이자 사진작가인 페드로가 섞여 있다. 커다란 덤불 뒤에 자리 잡은 페드로 눈앞에 원주민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슬며시 눈을 돌리는 그의 뒤에 셀크남족의 성인식 옷차림인 하인(Hain)을 한 사내가 서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페드로.

이윽고 시작되는 인간사냥과 "여자와 어린애는 안 돼!" 하는 높고 새된 소리가 들린다. 백인들 특유의 인도주의 표현이 '여성과 노약자 우선' 아니던가! 우리는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보다 여성의 육체를 탐닉하던 자임을 안다. 학살자들의 무자비하고 잔악한 도살이 한바탕 광풍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등장하는 놀라운 반전!

<화이트 온 화이트>에 이 장면이 없었다면, 영화는 밍밍했을 것이다. 페드로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 구도를 잡는다. 너덧 번의 뜀박질과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페드로는 가장 멋진 구도로 사냥의 결과물을 찬양하는 기막힌 예술작품을 구현한다. 순백의 소녀 사라를 찍은 예술작가 페드로가 구현해내는 도살 현장의 예술사진.

영화는 우리에게 유럽의 아메리카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시작한 중남미 마야와 잉카, 아즈텍문명의 후예들과 양키 아메리카가 자행한 북미 원주민들의 대대적인 학살.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려던 자들마저 예술과 기록의 이름으로 폭력에 편승하여 시신을 모독하는 범죄에 편승한 피어린 역사를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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