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직' 오명도 역사 속으로..38년 만에 사라지는 의경 마지막 시험 현장

채혜선 2021. 6. 12.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일 오후2시 경기남부경찰청 제5별관에서 제378차 의경 모집 시험이 치러졌다. 사진 채혜선 기자

11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 제5별관 1층 내 고사장.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남성 14명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양말과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팔굽혀펴기한 주혜성(19)씨는 “시험 중 미끄러워질까 봐 맨발로 임했다”며 “평범한 군 생활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의경에 지원했다. 마지막이니만큼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의경 선발 시험 현장 가보니

응시자들이 경찰 안내에 따라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오는 2023년 의무경찰제도의 완전 폐지를 앞두고 이날 경기남부경찰청 내 마지막 의무경찰(의경) 선발이 진행됐다.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닷새 동안 이뤄지는 제378차 모집시험을 끝으로 경기남부청은 더는 의경을 뽑지 않는다.

이날 모인 응시생 41명은 적성검사와 체력검사를 차례대로 치렀다. 체력검사는 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제자리멀리뛰기→외형검사로 진행됐다. 외형검사는 눈에 띄는 신체 부위에 문신 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1분에 20개를 해야 하는 팔굽혀펴기 검사에서는 탈락자도 종종 나왔다. 경찰관들은 팔굽혀 펴기를 하는 응시생들의 가슴과 바닥 사이에 주먹을 넣어 “주먹에 상체가 닿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한 응시생은 횟수를 채우지 못해 실격처리되자 멋쩍은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검사 기준을 채우지 못하면 채점표를 회수당하고 귀가 처리된다.

이번 회차에서는 일반 의경 34명, 특기(운전·조리) 의경 7명 등 모두 41명을 선발한다. 경찰 관계자는 “마지막 의경 선발 시험 응시자는 1265명으로 35.5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험에 응시한 김영욱(20)씨는 “이번에 합격하면 군 생활에서의 어려움 등도 잘 버텨보겠다”고 말했다.


우병우 아들은 ‘꽃 보직’ 논란도

2016년 우병우 아들 논란을 다룬 방송. 사진 JTBC 캡처

의경은 1982년 전투경찰대 설치법 개정에 따라 전투경찰순경을 작전 전경과 의무경찰로 구분하면서 만들어졌다. 1983년 2월 의경 1기가 최초로 입영한 후 2013년 9월 마지막 전경 3211기가 전역하면서 의경이 집회·시위 대응 등 전투경찰대의 모든 업무를 수행해왔다.

의경은 일반 군대보다 복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아 입영대상자 사이에선 꾸준히 인기가 있었다. 경쟁률이 수십 대 1을 기록하며 의경 시험을 여러 번 치르는 이들이 생겨나자 ‘의경 고시’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2016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의경으로 복무하며 특혜 의혹이 일었던 게 의경 인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2월 의경으로 입대한 우 전 수석의 아들은 같은 해 4월 15일 정부서울청사 경비대에 배치됐다가 두 달여 만에 경비부장 운전병으로 자리를 옮겨 특혜 논란이 일었다. 차장실 운전병은 이른바 ‘꽃보직’으로 불리는 자리라고 한다. 경찰은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우 수석 아들의 코너링 등 운전실력이 좋아 뽑았다”고 말했다가 구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38년 의경 역사 뒤안길로

응시자들이 안내에 따라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다. 채혜선 기자

의경 인기가 높아지며 경찰청은 2015년 12월부터 의경을 선발할 때 면접·능력검사를 없애고 추첨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가 전체 병역 체계에서 의경으로 지원자가 쏠리는 현상이 과도하다고 판단해서다.

이후 2017년 ‘의무경찰 단계적 감축 및 경찰 인력 증원방안’이 국정과제로 확정되면서 2018년부터 의경 인원은 매년 20%씩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의경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든다”며 “의경 감축에 따른 업무 공백은 경찰관 기동대 신설, 청사 방호 업무 전담 인력 채용 등으로 대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원=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