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원샷]미국이 돌아왔다는데..여전히 어른거리는 트럼프의 그림자

조민근 2021. 6.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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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국제팀장의 픽: “미국이 돌아왔다”

G7 정상회의 참석 차 영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현지 공군기지에 주둔한 미 공군장병들과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것(a big breath of fresh air) 같았다.”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회동을 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내놓은 소감이다. 외교적 수사가 섞였겠지만 ‘돌아온 미국’에 대한 반가움이 묻어난다.

미국이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서 선보인 ‘바이든표 외교’는 전임자와 비교하면 무엇보다 세련됐다. 청구서를 들이밀기에 앞서 명분과 상대를 추켜세우는 ‘레토릭’으로 한껏 분위기를 띄운다.

존슨 총리와 만났을 때는 새로운 ‘대서양 헌장(the Atlantic Charter)’을 꺼내들었다. 80년 전인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의 재편 방향을 정한 역사적 문서를 업데이트한 것이었다. 트럼프식 일방주의를 벗어나 상대를 제대로된 파트너로 대접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10일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G7 회의가 열리는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선물 보따리도 통 크게 풀었다. 백신 5억 회분을 “조건없이” 가난한 나라들에 기부하겠다며 부자 나라들인 G7 회원국의 동참을 유도했다. 이런 ‘리더십의 복귀’에 전세계 언론도 ‘그래, 이게 미국이지’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하다못해 질 바이든과 멜라니아 트럼프의 영부인 패션까지 비교하면서다.

실제 바이든 취임 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대폭 올라갔다. 퓨리서치센터가 올 3~5월 한국을 포함한 16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에 우호적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62%였다. 지난해 조사 당시의 34%에서 무려 28%포인트가 뛰었다.

이렇게 보면 바이든과 함께 ‘리더’의 모습을 한 미국은 돌아온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온 미국은 예전의 그 미국일까. 좌충우돌하던 트럼프식 ‘아메리카 퍼스트’는 막을 내린 것일까.

바이든의 노련한 외교술과 레토릭을 한꺼풀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미국 중산층 복원’을 전면에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의 방향 역시 일찌감치 ‘중산층을 위한 외교’로 규정지었다. 미국의 중산층, 노동자들의 실익이 내치는 물론 외교상의 모든 대의와 명분에 앞선다는 얘기다. 포장이 바뀌었지만 내용물은 어찌 ‘아메리카 퍼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미국은 바이든이 동경하는 2차 대전 직후의 자신감 넘치는 미국이 아니다. 심각한 정치ㆍ경제 양극화에다 트럼프 현상으로 상징되는 ‘고립주의’의 욕망도 여전하다. 워싱턴의 정치인 바이든 역시 이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5억 회분의 백신을 풀겠다고 나선 것도 미국 내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긴 뒤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2일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주재한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웨이퍼를 직접 흔들며 ″반도체는 미국의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이 영국으로 향하기 전 미국 상원은 주요 핵심산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발맞춰 백악관은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활성화'라는 청사진을 담은 250쪽짜리 장문의 보고서를 냈다.

둘 다 핵심은 미국 내로 제조업을 끌어오는 것이다. 중산층을 복원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를 가장 잘 만들어내는 건 뭐니뭐니해도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한국의 관료들에게조차 구시대 유물처럼 취급되던 ‘산업정책’을 선진 시장경제라는 미국이 전면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백악관의 보고서에는 삼성ㆍSKㆍLG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여러차례 언급됐다.

결국 미국은 돌아왔지만, 우리가 예전에 알던 그 미국과는 결이 다른 셈이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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