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서 110억 찾은 후 삶 몰락" 굴착기 기사에 무슨 일이

김준희 입력 2021. 6. 12. 05:01 수정 2021. 6. 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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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즐펀한 토크] 김준희의 '사건 포클레인'
도둑 몰린 굴착기 기사, 경찰 신고하자 돈 쏟아져



땅 파헤치자 현금 뭉치 '와르르'
지난달 24일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한 마을. 샛길로 들어서자 소나무 몇 그루와 함께 잡초가 무성한 땅이 나왔다.

10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제 마늘밭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 돈다발이 묻혀 있던 마늘밭은 이제 인적조차 드문 황무지로 변했다.

2011년 4월 경찰이 김제 마늘밭에서 찾은 돈다발. 중앙포토



밭주인 처남 도박사이트 수익금
지난 2011년 4월 당시 김제 마늘밭(990㎡)에서는 현금 110억원가량이 나왔다. 경찰이 굴착기로 땅을 파헤치자 5만원짜리 현금 뭉치가 담긴 페인트통 등이 쏟아졌다.

이 돈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던 충남 이모씨 형제가 벌어들인 '검은 돈' 150억원의 일부였다. 이들의 매형 이모(당시 52세)씨 부부가 처남들의 돈을 받아 마늘밭에 숨겼다.

이 사건은 애초 땅 주인의 부탁으로 마늘밭에서 소나무·매화나무 등을 옮기던 굴착기 기사 안점상(64)씨가 이씨로부터 도둑으로 몰리자 "누명을 벗겠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씨는 처남 몰래 2억4000만원을 쓰고, 굴착기 기사에게 뒤집어 씌우려다 경찰에 발각됐다.

2011년 4월 경찰이 김제 마늘밭에서 찾은 돈다발. 중앙포토



"기 받겠다" 전국서 구경꾼 몰려
사건이 알려진 뒤 전국에서 구경꾼이 몰렸다. '마늘밭에서 기를 받겠다', '여기가 110억원이 묻혔던 장소냐' 등을 묻는 외지인들 때문에 주민들은 몸살을 앓았다.

당시 마늘밭과 거기서 나온 현금 110억원은 국고로 환수됐다. 이후 2014년 당시 전주에 사는 50대 남성이 경매에 나온 마늘밭을 주변 시세보다 2배가량 비싼 1억500만원에 낙찰받은 뒤 지금까지 땅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24일 전북 김제시 금구면. 2011년 4월 현금 110억원이 나온 '김제 마늘밭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0년 만에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변했다. 김제=김준희 기자


매형 부부, 범죄수익은닉죄로 징역형
도대체 이씨 부부는 왜 막대한 현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시골 땅에 묻었을까.

중앙일보가 입수한 이씨 부부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전주지법은 2011년 8월 10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1년, 이씨 부인(당시 50세)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 등이 숨긴 범죄 수익금 전액과 이 돈을 파묻은 마늘밭을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이씨 부부는 2012년 3월 대법원에서 검찰 상고가 기각돼 원심 형이 확정됐다.

조사 결과 이씨 처남(기소중지)은 2008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서버를 개설하고 중국 청도시에 충·환전 사무실을 차린 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150억원 상당의 수익을 얻었다. 처남은 도박개장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자 그 수익금을 이씨 부부에게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2011년 4월 김제 마늘밭에서 경찰이 굴착기를 이용해 밭 주인 부부가 숨겨둔 돈을 찾고 있다. 중앙포토



처남 "땅 사서 안전하게 돈 묻어" 지시
매형 이씨는 2009년 6월 인천의 한 거리에서 처남의 부탁을 받은 이들에게 현금 17억원을 건네받아 본인 차량에 실은 뒤 부인과 사는 전주시 모 아파트에 옮겼다. 이런 식으로 2011년 1월까지 12차례에 걸쳐 현금 112억3474만원을 받아 집 장롱 안과 화장대 밑, 다용도실, 금고 등에 나눠 보관했다.

이씨 부부는 2010년 5월 18일 김제에서 토지 2필지를 1억원에 샀다. 한 달 전 "보내준 돈으로 땅을 사서 안전하게 돈을 묻으라"는 처남의 전화를 받은 뒤였다.

이씨 부부는 아파트에서 보관하던 돈을 비닐로 포장한 뒤 김치통·실리콘통·양은찜통 등에 나눠 담아 밀봉했다. 이들은 2010년 6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이씨 차량을 이용해 돈을 운반한 뒤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 110억원가량을 김제 땅에 묻었다. 이씨 부부는 돈을 묻은 땅에 마늘·고추·들깨 등을 심었고, 이곳은 사건 발생 후 '마늘밭'으로 불리게 됐다.

경찰이 2011년 4월 김제 마늘밭에서 현금 뭉치가 담긴 페인트통을 살피고 있다. 중앙포토



형사 "밭주인 추궁하자 손 떨며 묵비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처남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번 돈임을 알면서도 112억여원에 이르는 거액을 수수해 보관한 점, 보관의 대가로 처남으로부터 생활비 명목으로 1억5600만원을 받은 점,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또 다른 처남은 대전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이 판결 그대로 확정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충남경찰청은 2010년 4월 이씨의 작은 처남을 검거했다. 큰 처남은 출국 금지와 수배령이 내려졌다. 경찰은 큰 처남이 중국에서 이씨 부부에게 국제전화를 건 정황을 토대로 중국에 밀입국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강모 경위는 "처남이 맡긴 돈은 확실한데, (마늘밭에 숨긴 돈 규모에 대한) 이씨 말이 수사 초기 7억원에서 12억원, 24억원으로 계속 바뀌어 이상했다"며 "우리가 계속 추궁하자 이씨는 손을 떨면서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했다. 그는 "돈이 더 있다고 보고 땅을 파헤쳤는데 100억원이 넘는 현금이 나와 깜짝 놀랐다"며 "당시까지 경찰에서 그렇게 큰 액수의 현금을 압수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경찰이 김제 마늘밭에서 압수한 돈다발 일부를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점상씨 "'조폭개입설'에 암 투병까지"
이 사건을 처음 알린 굴착기 기사 안씨는 마늘밭에서 나온 110억원의 일부라도 받았을까. 안씨는 사건이 일어난 마을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다.

안씨는 "마늘밭 사건 때문에 삶이 몰락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700만원씩 벌었지만, 사건 이후 생업을 포기했다. 안씨의 굴착기는 집 마당에 녹슨 채 방치돼 있다. 그는 "스트레스와 분노로 매일 술을 마시는 바람에 간암과 대장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했다.

안씨 부부는 '조폭이 개입됐다'는 소문 탓에 수년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안씨는 "머리맡에는 항상 가스총을 두고 자고, 마당에는 도베르만 등 맹견 서너 마리를 풀어놨다"고 했다. 지금은 10살짜리 암컷 호피무늬 진돗개 한 마리만 남았다.


200만원 받아…범죄수익 포상제 도입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안씨 부인이 운영하던 식당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포상금으로 수억 원 챙겼냐', '마늘밭에서 빼돌린 돈은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안씨는 "신고 포상금으로 경찰에서 200만원을 받은 게 전부"라고 했다. 경찰이 마늘밭에서 나온 돈을 유실물이 아닌 범죄수익금으로 봤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이 사건 이후 범죄수익환수 포상금 제도를 만들어 2014년 5월 29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불법 범죄수익이 국고에 귀속된 경우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한 사람 또는 몰수·추징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국고귀속 금액이 5000만원 미만이면 최대 500만원, 200억원 이상은 1억원까지 포상금을 줄 수 있다. 100억원 이상 200억원 미만이면 7000만원이다. 이 규정이 있었다면 안씨는 7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안점상(64)씨의 굴착기가 집 마당에 녹슨 채 방치돼 있다. 그는 '김제 마늘밭 사건' 이후 생업을 포기했다. 김제=김준희 기자



"케세라세라…이젠 맘 비워"
그는 "이씨가 나를 도둑으로 몰지 않았으면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는 맘을 비웠다. 지금은 '케세라세라'"라고 했다. 케세라세라는 스페인어로 '될 대로 되라'는 뜻이다.

안씨는 "처음엔 없던 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집사람이 '당신은 다른 일은 똑 부러지게 하면서 왜 도둑놈 소리를 듣고 있냐'고 해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당시 경찰을 불렀을 때 이씨 작은 처남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충남경찰청에 붙잡힌 작은 처남이 이씨 부인을 통해 안씨에게 전화를 바꿔줬다. 안씨는 "그 처남이 '매형이 정신이 왔다갔다 하니 나중에 찾아뵙고 술 한잔 찐하게 살게요'라고 했지만, '당신하고 할 이야기 없다. 그렇게 못한다'며 전화를 끊었다"며 "이후 경찰이 마늘밭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굴착기로 땅을 파헤치자 돈이 쏟아졌다"고 했다.

김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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