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한국도 '천조(千兆)국'

신준섭,경제부 2021. 6.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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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부르짖는 여당을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보너스’를 주겠다는 취지가 엿보인다. 경기 반등 시점인 만큼 내수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부스터 샷’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수십만원을 주겠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걸린다. 그 돈을 굳이 안 받아도 삶에는 지장이 없다. 꼭 주겠다면 재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이 지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업계 종사자를 비롯해 코로나 사태로 직장을 잃어 정말 힘들어진 이들이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들 비슷한 심정인 듯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더뉴스’ 의뢰로 실시해 지난 7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민의가 녹아 있다. 전 국민 보편 지급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8.0%에 불과했다. 선별 지급(33.4%)과 비등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급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25.3%)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편이냐 선별이냐의 이분법적 고민 외에 또 다른 고민이 한 축으로 떠올랐다.

재난지원금의 재원이 될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공식화한 배경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당초 예상보다 세금이 더 많이 걷힌 만큼 이를 재난지원금 등으로 쓰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지난 1~4월 누적 세수는 전년 동기보다 32조7000억원 더 걷혔다. 기저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전망치보다 높은 수준의 세금이 걷히고 있다. 곳간이 예상치 못하게 더 찰 거 같으니 베풀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을 꼭 써야만 할까. 지급을 반대하는 인식 속에는 빚을 갚아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자리한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 빗대 봐도 이런 우려는 합리적이다. 일반적으로 우연찮게 수입이 늘었을 경우 우리는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누군가는 더 번 돈을 저축하고 누군가는 빚을 갚는데 쓴다. 누군가는 추가 수입을 활용해 시원하게 소비에 나선다. 어떤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하기도 한다. 선택의 잣대는 재정 상황이다. 여유가 있다면 굳이 저축하거나 빚을 갚지 않고 시원하게 소비해도 되고 투자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정부의 상황은 그리 장밋빛이 아니다.

코로나19와 마주하기 전인 2019년만 해도 한국의 국가채무는 723조2000억원 규모였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 코로나 확산 이후 부쩍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올 초 1차 추경을 단행하며 올해 국가채무가 965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불과 2년 사이 나랏빚이 242조7000억원이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

외부 평가는 더 가혹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정부 추산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 올해 추정치를 1064조9000억원으로 제시하며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돌파한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고 부쩍부쩍 늘기만 한다. 2026년이면 1682조4000억원까지 급등한다는 추정을 더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9.7%까지 치솟는다. 시나리오대로라면 2026년에 한국보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은 선진국은 손에 꼽을 수준으로 줄어든다.

올해가 됐든 내년이 됐든 한국이 짊어져야 할 빚이 1000조원을 넘어선다는 점은 흘려들을 만한 일이 아니다. 빚이라는 것은 결국 갚아야 할 부담이다. 형편이 좋을 때 줄여가는 게 상수다. 앞으로도 형편이 좋을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또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극복해 낼 여력을 비축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세계 최강 대국인 미국을 ‘천조(千兆)국’이라고 부른다. 국방비에만 1000조원 가까운 쏟아 붓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강대국이란 함의가 들어 있다. 한국도 ‘천조국’을 목전에 두고 있기는 하다. 다만 여기서의 ‘천조’는 힘의 상징이 아닌 나랏빚을 의미한다. 가능하다면 굳이 달고 싶지 않은 꼬리표다. 화끈하게 예산을 푼 여당이 “우리 앞으로 먹고살 게 이렇게 많다”고 보여준 것이 거의 없어서 걱정이 더욱 앞선다. 자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멍에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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