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면제' 내로남불.. 보수정권 때보다 文정부가 훨씬 많다

신재희 2021. 6. 1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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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때 60조, 朴 정부 때 23조원
문재인 정부들어 120건에 97조
지역균형 앞세워 경제성 무시
재정 비효율·형평성 문제 지적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해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여야가 신공항 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사전타당성 조사도 간소화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지난 2월 통과시켰다. 국민일보DB


문재인정부는 2017년 출범 당시 토목·건설 중심의 경제발전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무색하게 문재인정부의 지난 4년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비 규모는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 때 면제됐던 예타 규모 총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최대 28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가덕도신공항 이슈까지 겹치며 ‘신(新) 토건정부’라는 비판을 듣는 중이다.

문재인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는 총 120건, 사업비 규모는 97조3000억원으로 이명박정부(60조3109억원), 박근혜정부(23조6169억원) 때 면제됐던 예타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남은 1년 임기 동안 예타 면제 사업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예타 면제 사업 2개 중 1개는 사유가 ‘지역균형발전’ 혹은 ‘긴급한 경제·사회 상황 대응’ 때문이었다.


문재인정부의 특징은 예타 심사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보다 지역균형발전 실현에 무게추를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 부문에 치중하다 보면 재정의 비효율성 문제,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역균형과 경제성, 무엇이 먼저인가

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중시하는 국정 철학을 예타 심사에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정부가 2019년 4월 내놓은 예타 제도 개편방안에 잘 드러난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평가항목 비중을 이원화해 낙후지역을 배려하기로 했다. 비수도권에 대해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현행보다 5% 포인트 높이는 대신 경제성 가중치를 5% 포인트 낮춘 것이다. 당시 개편으로 경제성이 다소 낮아도 지역균형에 필요한 사업이면 예타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비수도권과 광역시의 지방 숙원사업들이 탄력을 받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말 지역균형발전 평가 때 지역 여건과 관련한 다양한 지표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낙후도지수 산정방식을 개선했다. 원래는 인구, 경제, 기반시설 등 8개 지표만 활용해 지역낙후도지수를 산정했는데, 여기에 더해 교육, 문화여건, 안전, 환경 등 36개 지표를 활용키로 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에 무게를 두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제성 평가는 뒤로 밀리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진보 정권에서 이러한 경향이 일관되게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원래 예타는 1999년 김대중정부에서 무분별한 토건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는데, 노무현정부 때 경제성 외에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확대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 노무현정부는 종합평가(AHP) 제도도 도입했다. 예타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는 경제성 분석(B/C·비용 대비 편익)만 있었는데, 2003년 AHP를 도입해 편익보다 비용이 커도 ‘정성적 평가’를 통해 예타를 추진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어떤 방향이 맞느냐를 놓고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단 우리나라 수도권·비수도권 간 격차가 워낙 크고, 사회간접자본(SOC)이 지역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만큼 지역균형발전 비중을 높이는 것이 시대에 맞는 흐름이라는 의견이 있다. 반면 수도권에 쓰여야 할 재원이 지방으로 이전되면서 역차별 문제가 생기고, 세입·세출 형평성 문제도 있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한 예타 제도의 취지가 흐려지고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예타 무력화’ 호시탐탐 노리는 정치권

최근 들어서는 예타를 무력화하려는 법안이 정치권에서 쏟아지고 있다. 예타 대상 자체를 축소하거나 예타 권한을 기재부에서 빼앗는 내용 등이 골자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도로·철도·공항·항만 등 사업 규모가 큰 SOC에 대해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국가재정 투입 규모 500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냈다. 지금은 총사업비 500억원, 국가재정지원 300억원 이상인 사업이 예타 대상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예타 권한을 각 중앙부처가 ‘셀프 검증’하도록 하자는 법안을 냈고, 양경숙 민주당 의원도 예타 결과를 국회가 심사해 필요시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사실상 정치권 입맛대로 예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지역·분야 사업은 예타 대상에서 빼자는 법안도 있다. 김성원·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접경지역 관련 사업은 예타를 면제하자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 관련 사업은 예타에서 빼주자는 법안도 나와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예타 무력화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11일 “예타를 각 사업 부처로 옮길 바에야 차라리 그냥 예타 제도를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대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게 뻔하다”며 “예타 기능이 완화되거나 무력화되면 재정 낭비를 감당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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