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소설가 김초엽은 아버지의 무대를 기다린다

이마루 2021. 6. 12.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전하는 안부, 공연은 안녕한가요?
「 여름밤 무대를 기다리며 」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재작년까지는 다른 SNS로 이런저런 공연 소식을 전해오다가 코로나19 이후 소식이 뚝 끊겨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온라인 공연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서울로 가는 KTX 안에서 라이브가 열린다는 짧은 소식을 접했던 2019년 겨울이 떠오른다. 강연 장소에서 홍대 라이브 클럽까지의 거리, 막차 시간과 숙소 위치 따위를 한참 고민하며 가볼까 말까 생각하다가 ‘오늘은 강연도 하고 피곤하니까, 다음 기회가 있겠지…’ 하고 그냥 울산으로 돌아왔던 기억. 그때는 다음 기회라는 게 한동안 없을 줄 몰랐다. 인스타그램에는 그간의 온라인 라이브나 작업 중인 후속작에 관한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올라와 있어서, 안심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으로 지난 흔적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빠의 소셜 미디어가 생각났다. 거의 매주 공연 소식이 올라오다가, 몇 달째 거의 멈춰 있다시피 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아빠는 무대 공연 위주로 활동하는 음악가다. 오카리나와 드럼을 비롯한 타악기를 주로 연주하는데, 직접 연주자로 무대에 출연하거나 행사의 음악감독, 악기 레슨 등을 해오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선 아빠를 보는 일에 익숙했다. 지역 축제나 행사 무대, 홀에서 열리는 단독 공연, 심지어 성탄절 교회 무대까지. 초등학생 때는 아빠가 출연하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기억도 난다. 재즈 바에서 아빠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고는 옆의 대기실에서 PD에게 “아빠는 어떤 음악가인가요? 멋진 말로 표현해 주세요” 같은 질문을 들었다. 뭐라고 답했더라. 분명 “아빠는 고독한 나그네 같아요” 비슷한 답변이었는데…다행히도 그 멘트는 편집돼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화려한 조명 아래 선 아빠, 여유 있게 멘트를 하며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는 아빠, 카메라 앞에 선 아빠 그리고 박수갈채를 받는 아빠를 자주 봐왔다. 가끔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솔직히 너무 익숙한 나머지 약간 심드렁해진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일이 코로나19에 의해 크게 타격받은 영역이라는 것이다. 1년 반이 지나면서 점차 재개되거나 회복된 것이 있는 반면 무대 공연만큼은 지금도 돌아오지 못했다. 악기 레슨도 그렇다. 악기 중에서도 하필이면 입을 대고 부는 오카리나다 보니 아빠는 무척 곤란한 상황이 됐다. 지난해부터 아빠의 많은 일이 ‘올 스톱’됐다. 매달 바뀌는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간혹 레슨을 진행하기도 하고, 가끔 확진자가 점점 줄어 이런저런 공연이 기획된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희망을 품을 법하면 다시 확진자 수가 증가하곤 했다. 결국 공연은 희망 고문을 거듭하다 대부분 취소되고 말았다.

아빠의 무대를 생각할 때면 나는 울산의 여러 장소를 배경으로 떠올린다. 가을철이 되면 까마귀 군무가 펼쳐지는 태화강 변, 참돌고래들이 사는 울산 앞바다의 고래 탐사선, 장미가 가득 핀 봄철 대공원의 무대 등 많은 이가 찾아가는 장소들이 아빠의 주된 무대였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울산 곳곳의 풍경들을 생각할 때 아빠의 무대를 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가장 먼저 사라진 것도 바로 그런 곳들이었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축제 장소들. 그냥 즐거움을 위해 떠났던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도 그 북적이는 풍경이 이렇게 그립고 아쉬운데, 축제를 무대 삼았던 아티스트들은 얼마나 그 무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지난여름, 거의 반년 만에 울산에서 야외 공연이 열렸다. 입장 부스에서 체온을 재고 손 소독을 하고 거리를 띄어 자리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크게 울리는 무대 리허설 소리, 눈부신 조명과 웅성거림, 소리가 뒤섞여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여름밤 공기. 그 모든 것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예전처럼 발 디딜 틈 없이 객석을 빽빽이 채우거나 마냥 소리를 지르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무대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나와 가족들은 아빠의 공연을 보러 간 거였다. 색색의 조명이 환히 밝혀지고 그 아래에 선 아빠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간 수없이 봐온 아빠의 공연인데도 다시 이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새벽에 돌아온 아빠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쉽지만 그 한 번의 야외무대 이후에는 대중음악 공연의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고, 그마저도 드물게 열리고 있다. 축제의 열기, 공연장을 가득 채운 환호성, 옆 사람과 자꾸 어깨를 부딪치는 북적거리는 스탠딩 공연은 앞으로도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다. 대중음악가들의 생계와 인디 공연장의 존속이 위협받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예전과 같은 무대를 재개하기는 어렵더라도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든 버틸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있기를, 소규모 무대 실정에 맞춘 현실적인 정책 변화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를 기다릴 아티스트들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시 만날 날을 정말 손꼽아 기다린다고. 공연이 재개되면 꼭 찾아가겠다고. 당신의 음악이 가득 채우는 그 후텁지근한 공기와 여름밤을 우리 모두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이다.

김초엽 93년생 소설가. 포항공과대학교 생화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없다면〉을 비롯한 SF 소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쓴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