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의 시대..파이터보다 100배 더 버는 유튜버

김식 2021. 6. 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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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한국시간) 50전 무패(27KO)의 프로복싱 전설 플로이드 메이웨더(44·미국)와 유튜버 로건 폴(26·미국)의 복싱 시범경기의 후폭풍이 거세다.

폴은 메이웨더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하드록스타디움에서 열린 복싱 이벤트 매치(3분 8라운드)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대결이 공식 경기로 인정받지 못한 건 둘의 체급 차 때문이다. 메이웨더(173㎝·70㎏)보다 폴(188㎝·86㎏)이 훨씬 무거워서 플로리다주 체육위원회가 경기를 승인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메이웨더는 폴을 KO로 쓰러뜨리지 못했다. 공식경기가 아니기에 메이웨더의 '완벽한 전적'에 흠집이 난 건 아니다. 다만 자존심을 구겼을 뿐이다.

지난 7일(한국시간) 이벤트 경기를 치르고 있는 로건 폴(좌측)과 플로이드 메이웨더(우측). 사진=게티이미지

메이웨더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 얻었다. 그는 최근 도박으로 5000만 달러(580억원) 이상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폴과의 경기로 메이웨더는 1억 달러(1110억원) 정도를 번 것으로 예상된다.

폴도 승리자다. 그는 이벤트 매치 후 대략 2000만 달러(233억원)를 벌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복싱 전적은 한 경기(1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폴은 복싱 챔피언 이상의 돈을 벌었다.

스포츠팬들에게 낯설지 몰라도, 폴은 구독자 2300만 명 이상을 확보한 유튜브 스타다. 엔터테이너라고 볼 수 있는 그는 멋진 체격과 운동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끊임없는 도발 끝에 메이웨더와의 복싱 대결을 성사했다. '어그로(자극적인 말과 행동으로 관심을 모은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를 끌어 당대 최고의 복싱 스타와 함께 링에 선 것이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성사될 수 없는 이 복싱 경기에 팬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게 곧 광고 수익과 페이퍼 뷰(PPV·유료 시청)로 이어졌다. 메이웨더는 복싱 5체급 챔피언을 지낸 명예를 집어던지고, 돈이 되는 폴과의 싸움을 마다치 않았다.

미국 CBS스포츠는 7일 '2021년 복싱의 장소는 이제 유튜브인 걸까? 유튜버가 스포츠의 미래인가? 메이웨더의 경기는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복싱의 모습일까?'라는 기사를 썼다. 이 매체는 '이 경기는 복싱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대중의 시선을 자극하는 예능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뉴욕타임스도 '이건 스포츠가 아닌 엔터테인먼트'라고 평가했다.

체급과 경력, 기량 등이 무시된 메이웨더와 폴의 대결에는 오락적 요소만 있었다. 스포츠의 시각에서 보면 이 경기는 졸전이었고, 두 주인공이 돈만 벌어간 '서커스 매치'였다.

유튜버가 스포츠의 주인공이 된 것은 폴의 사례만이 아니다. 그의 동생 제이크 폴(24·미국)도 구독자 2000만 명을 가진 유튜버다. 지난해 복싱에 데뷔한 그는 지난 4월 종합격투기 스타 벤 아스크렌과 링에서 만나 1라운드 KO승을 거뒀다. 하반기에는 종합격투기 UFC 웰터급 전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와 붙는다.

아스크렌과 우들리는 종합격투기 챔피언을 지낸 스타다. 이들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유튜버와 싸우는 건 역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어그로 싸움'에서 아스크렌은 UFC에서 받던 대전료의 두 배가 넘는 50만 달러(5억6000만원)를 벌었다. 여기에 각종 스폰서 수입까지 챙겼다.

유튜버들의 쇼 비즈니스는 파이터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했다. 메이웨더와 폴의 경기가 끝나자, UFC 선수 파울로 코스타(30·브라질)는 오는 8월 예정된 경기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UFC 파이터의 수입이 유튜버의 복싱 시범경기 대전료보다 현저히 적다는 게 이유였다.

코스타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UFC는 메인 이벤트에서 싸우는 선수에게 합당한 파이트 머니를 지불해야 한다. 유튜버들이 이 바닥의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고 썼다. 미들급 타이틀전까지 치른 그의 대전료는 35만 달러(3억75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코스타뿐만 아니다. 현 UFC 챔피언으로 세계 최고의 파이터라는 프란시스 은가누(35·카메룬)는 SNS에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고 썼다.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며, 목숨을 건 위험한 스포츠를 하는 파이터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UFC가 버는 수익에 비해 파이터에게 지급되는 돈이 적다는 건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UFC 파이터의 비교 대상이 오랜 역사와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프로복싱일 때도 불만이 컸는데, 유튜버들과 비교하니 소외감이 더 폭발했다. 폴 형제가 복싱으로 번 돈은 웬만한 파이터의 100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은 파이터들에게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지난 9일 TMZ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UFC 선수들이 돈 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 킴 카다시안과 (UFC 여성 밴텀급·페더급 챔피언) 아만다 누네스가 싸우면 어떨까? 엄청난 돈이 쏟아질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받는 돈에 관해 말하지 말라. 폴 형제는 12살부터 유튜버로 활동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유명세를 만들었다. 하룻밤에 이뤄낸 일이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화이트 회장은 경기를 거부한 코스타를 두고 "넌 유튜버가 아니다. 넌 파이터다. 싫으면 그만둬라"고 압박했다.

서로 다른 무술을 겨루는 UFC는 1993년 창설 후 2000년 초반까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UFC는 꾸준히 사업을 확장했다. 그 핵심 콘텐트가 화끈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트래시 토크 등 '어그로'였다. 2016년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회사 WME·IMG가 UFC를 40억 달러(4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화이트 대표 등 UFC 대주주는 15년 만에 20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파이터들은 UFC의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처우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더 큰 플랫폼인 유튜브, 더 강력한 '어그로'에 밀리고 있다.

서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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