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앞쪽 아버지 구조됐지만.. 뒷좌석 막내딸은 끝내 주검으로

매몰된 승객들 안타까운 사연

철거작업 도중 무너져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의 건물. 붕괴되기 전 철거작업에 나섰던 굴착기가 지난 1일 저층부터 건물을 부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연합뉴스

부모와 떨어져 살던 막내딸 A씨(29)는 지난 9일 오랜만에 광주 동구 학동 근처의 본가에 방문했다. 그러곤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석 달 전 수술한 어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탄 버스는 옆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덮쳐 매몰됐다.

버스 앞쪽에 앉았던 아버지는 사고 직후 구조돼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딸은 주검이 돼 돌아왔다. 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우리 딸은 괜찮냐”고 수소문했지만 A씨는 싸늘한 주검이 된 채 구조됐다.

지난 9일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 건물 붕괴사고로 사망한 버스 승객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망자 가운데 고교 2학년생인 B군(17)도 있었다. 비대면 수업 기간이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러 학교에 갔다 귀가하는 길이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B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버스카드 결제내역을 확인한 뒤 붕괴 현장으로 달려가 다급히 B군을 찾았다. 그는 “아들이 버스에 탄 것 같다”며 “얼굴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2차 붕괴 위험이 있다며 제지했다. B군은 결국 인명피해 현황판에 9번째 사망자로 이름을 올렸다. B군은 늦둥이 외아들로 각별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져 주변 사람들을 더 가슴 아프게 했다.

희생자 C씨(53)의 아들은 병원에서 보관하던 유류품 속에서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견하고 어머니와의 작별을 직감했다. 평소보다 어머니의 퇴근이 늦어지고 연락이 닿지 않자 무작정 사고 현장으로 가 구조된 탑승객이 옮겨졌다는 병원을 돌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몇 년 전 심장병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았다”면서도 “이렇게 떠나실 줄은, 이렇게 어이없이 임종을 맞을 줄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큰아들 생일날에 비극을 맞은 어머니도 있었다. D씨(65)는 전날 아침 미역국을 끓여놓고 일터로 향했다. 2년 전쯤 고생 끝에 법원 앞에 차린 작은 곰탕집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든 탓에 D씨는 점심장사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날도 평소처럼 다음 날 장사에 쓸 음식 재료를 사려고 시장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D씨는 집 앞 정류장까지 불과 두 정거장밖에 남지 않은 곳에서 참변을 당했다. D씨의 아들들은 “어머니께서 항상 고생하시던 모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70대 여성 E씨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광주 동구는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꾸리고 사고 희생자 장례 및 유가족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사고 희생자 9명과 중상자 8명에 대해 예비비를 활용해 장례비, 숙소 및 식비 지원 등 생활안정 지원에 나선다. 임택 동구청장은 “유족분들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덜어드리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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