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권유한 고목 풍경.. 친구 따라 붓 잡는 '자연 예술가'

손영옥 2021. 6.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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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화가 임동식·우평남 "우린 친구"
임동식 작가가 최근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박수근미술상 수상기념전에 전시된 ‘친구가 권유한 방흥리 고목나무 8방향’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양구=최현규 기자


“친구! 어느 방향에서 본 나무가 제일 좋은가.” 화가 임동식(75)씨가 물었다. 동갑내기 우평남씨는 그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고목나무 주위를 천천히 빙 돌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 좋은걸.”

‘친구가 권하는 검바위 고목’(2008∼2010), ‘친구가 권유한 방흥리 고목나무 8방향’(2002∼2010)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무든 뭐든 풍경화는 한 지점에서 대상을 잡아 그리게 마련이다. 서양화의 일점투시도법이 일제강점기 이후 본격적으로 전해진 영향이 크다. 임 작가는 고정관념을 탈피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혹은 보다 세분화해 8방향에서, 즉 사방에서 본 나무를 하나하나 그렸다. 친구가 권유한 방식이 일리가 있어서였다.

산에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이달 초 임 작가를 만나러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을 다녀왔다. 지난해 9월 제5회 박수근미술상을 받은 뒤 수상기념전을 열고 있어서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친구가 권한 고목나무 두 그루를 각각 그린 캔버스들이 원을 그리듯 진열돼 반갑게 관람객을 맞이했다. 햇빛 받는 남쪽은 연녹색으로 풍요롭고 햇빛을 받지 못한 북쪽은 역광으로 어두웠다. 통유리로 빛이 그득 들어오는 전시장이었다. 캔버스를 빙 돌며 구경하다 보면 실제로 우씨가 주위를 돌며 찬찬히 보던 고목나무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

임 작가의 고목나무는 유화로 그렸다. 그럼에도 유화 특유의 번들거림이 없다. 대개 유화 물감이 잘 섞이도록 새로 오일을 추가하지만 일부러 오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캔버스 표면이 번들거리면 유럽의 풍경 같아요. 건조한 느낌이 나야 뽀송뽀송하고 명징한 날씨의 우리 풍경이 되지요.”

‘친구가 권하는…’ 연작 중 더 늦게 그린 ‘검바위 고목’은 기법에서도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그는 빈 화면에 무성한 나무 잎사귀만 가는 붓으로 툭툭 쳐서 표현할 뿐 전통 산수화처럼 하늘색을 따로 칠하지 않았다. 칠하지 않은 여백은 관람자를 그림 속으로 불러들이며 공명을 일으킨다

임 작가는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중·고교를 나온 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다녔다. 1974년 대학 졸업 후 소위 ‘자연 미술’을 했다. 75년 한국미술청년작가회 회원들이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야외 작품 전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요절 작가 전국광(1946∼1990)씨가 해변의 ‘할배 바위’에 흰 광목으로 수평선과 일치하게 선을 두른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게 준 감동은 엄청났다. 서양의 어떤 대지미술도 흉내 낼 수 없는 동양의 대지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공주로 내려와 1981년 야외 설치 미술 그룹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온몸에 풀 꽂고 걷기’ 등 자연과 합일하고자 하는 퍼포먼스 성격의 작품을 발표했다. 임 작가는 자연미술을 더 연구하기 위해 같은 해 독일로 유학을 떠나 함부르크 미술대학교 자유미술학과를 다녔다. 유학 중에도 계속 야투에 관여하며 국제교류를 추진했다. 그는 1990년 귀국했지만 여느 유학파 화가와 달리 서울에 정착하지 않고 공주로 내려왔다.

지인의 고향인 공주 신풍면 원골 마을에 정착했고 야외 미술 연구 프로젝트를 하다가 내친김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2000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 미술제도 열었다.

“청년 작가들이 짚단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걸 본 마을 사람들이 '아, 저게 미술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어’라고 나선 거예요. 그래서 주민이 주최하는 미술제가 생겨난 거죠.”

주민들은 ‘벼바심’(벼타작) ‘참게잡이’ ‘알 낳는 닭’ 등 시골생활을 소박하게 형상화한 작품을 내놓았다.

친구 우씨는 원골마을 주민이 아니다. 집밥 같아 자주 가던 공주 시내의 ‘놀부식당’ 안주인의 남편이다. 그는 계를 15개나 할 정도로 잘 논다. 그가 있으면 어떤 모임이든 흥이 난다. 그런 남편을 아내는 ‘놀부’라 불렀고 식당 이름으로 삼았다. 한때 버스 기사로 일했던 우씨는 그 무렵 산으로 마를 캐러 가고 논으로 우렁이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니며 식당의 부재료를 댔다. 식당에 그가 산에서 주운 나무뿌리로 만든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임 작가가 반했다. ‘저런 게 예술’이라고 생각한 임 작가는 우씨와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둘은 해방둥이 동갑내기였다.

자신이 권한 고목나무를 그리는 임동식 작가(오른쪽)를 지켜보는 우평남씨. 작가 제공


우씨가 어느 날 말했다. “맨날 나뭇가지로 만드는 거, 그런 거 말고, 그리기도 해 보슈. 아주 크고 복잡하게 뒤틀린 고목나무도 그릴 수 있는 거요?”

그렇게 고목나무를 좋아하는 친구 우씨가 권하는 나무 연작이 시작됐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임 작가를 위해 우씨는 자신의 차로 태워다 주고 임 작가가 그리는 동안 산에 가서 칡을 캐고 논에 가서 우렁이를 잡는 등 자신의 일을 했다.

그러다 우씨도 화가가 됐다. 화가 친구의 권유로 일반인 우씨도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임 작가는 자신을 ‘일반 예술가’, 우씨를 ‘자연 예술가’라 정의했다. 그러면서 “‘우 화백’이 벌써 전시를 몇 번이나 했다”고 자랑했다.

‘우 화백’의 작품은 미대 나온 화가들과 어떻게 다를까.

“큰 고목나무를 그리고 있으면 동네 분들이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같으면 저런 큰 나무를 그리면 단오절에 동네 처녀가 댕기머리 휘날리며 그네 타는 모습을 같이 그렸을 것인데, 왜 고목나무만 그리고 마느냐고요. 꽃을 그려놓은 걸 보면 왜 꽃은 그리고 나비는 안 그리냐고 물어요. 저는 댕기머리 처녀나 나비를 그릴 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그게 어쩌면 한국 사람이 갖는 미적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미감이 고스란히 ‘우평남식 그리기’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우평남을 통해 한국인이 찾고 있는 그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임 작가는 10년간 원골 마을에 살다가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2003년 대중교통이 편한 공주 시내로 이사 왔다. 우씨 부부가 살던 옛 한옥을 개조해 작업실을 마련했다. 우씨 부부가 아파트로 살러 들어가는 바람에 비어있던 곳이었다. 최근에는 사정이 생겨 아파트에서 나온 우씨 부부와 임 작가가 한집에서 같이 산다.

전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임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회화 작품과 자료가 대거 나오는 등 회고전 형식으로 꾸려졌다. ‘자연예술가와 화가’ ‘친구가 권유한 풍경’ 등 두 사람과 얽힌 코너가 특히 눈길을 끈다. 9월 26일까지.

양구=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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