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관사부터 잠실주공까지.. 20세기 주택사

김남중 2021. 6. 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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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택 유전자 1·2
박철수 지음
마티, 708·654쪽, 각권 3만3000원
6·25전쟁 후 이승만 정부는 외국 원조자금과 자재를 주택 생산에 대거 투여했다. 서울 회기동에 조성된 UNKRA(유엔한국재건단) 주택단지(1955년)와 한미재단 원조주택 중 단독주택 단지(1958년). 마티 제공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내 이름을 얻은 주택 유형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일본인 관사, 부영주택, 도시한옥, 재건주택, 외인주택, 상가주택, 국민주택, 민영주택, 시험주택, 맨션아파트, 주공아파트, 다세대주택….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집필한 ‘한국주택 유전자 1·2’는 1920년대 일본인 관사부터 1990년대 다세대주택까지 한국 사회에 출현한 거의 모든 주택 유형들을 총정리했다. 두 권을 합치면 13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책에는 대부분 최초로 공개되는 행정·외교 문서, 건축 도면, 사진, 신문·잡지 광고 등이 다수 수록됐다. 1150컷이나 되는 도판이 지금은 기억에서도 사라진 과거의 주택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근현대 주택의 아카이브 수준을 넘어선다. 주택 변화 과정을 살피면서 각 주택이 주고받은 영향과 관계를 규명해 계보를 그려낸다. 모든 주택은 당대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그 이전 주택을 계승하고 이후 주택으로 전승된다. 책 제목이 ‘한국주택’이 아니라 ‘한국주택 유전자’가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책은 한국 근현대 주택의 출발점을 1920년대 ‘관사와 사택’으로 본다. 일제강점 이후 조선으로 부임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지은 관사와 사택은 일본에 의해 수입, 번역된 서구 근대주택이었다. 이들 주택은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제일 먼저 접수돼 사용됐다. 일본인 관사와 사택은 그렇게 해방 이후 질 좋은 주택의 표준이 됐고, 이들이 밀집한 지역은 한국 상위계층의 주거지가 된다.

미군이 들어온 뒤엔 미국식 주거 문화도 이식됐다. 미군 가족용 주택인 ‘DH주택’(Dependents Housing), 이태원과 한남동에 집단적으로 조성된 ‘외인주택’ 등은 한국 고급 주택의 원형이 됐다.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전쟁, 산업화, 도시화로 이어진 한국의 20세기가 주택이 절대 부족했던 시기,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으로 주택을 대량 공급한 시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1950년대 외국 원조나 차관으로 지은 UNKRA주택, ICA주택, AID주택 등도 있었다.

해방 이후 정부는 재건주택, 희망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서민들을 위한 주택을 공급한다. 서울 남대문로와 을지로, 퇴계로, 세종로 등에 지금도 남아 있는 상가주택은 1950년대 지어진 최초의 상업지역 내 주상복합건축물로 2000년대 이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이어진다.

한국주택의 지배적 유형이 된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이었다. 그러나 6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가난한 이들의 거처, 임대주택, 임시로 사는 곳으로 취급받았다.

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12월 1일 1차 준공된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 주거동의 모습. 마포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이자 주거지를 고층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마티 제공


한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혁명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전시물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박 대통령은 62년 12월 마포아파트 1차 준공식에 “본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는 축사를 보냈다.

마포아파트 준공 직후 ‘고층아파트 건설에 따른 지방세 감면 조치’가 시행되면서 전례 없는 아파트 건설 붐이 시작된다. 서민아파트, 상가아파트, 시민아파트 등 다양한 이름의 소형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정책 기조는 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제동이 걸린다. 이후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 대량공급 시기가 시작됐다.

한강맨션아파트를 시작으로 70∼71년 준공된 여의도시범아파트와 반포주공1단지는 중산층을 위한 맨션아파트로 한국에서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 구별 짓기의 수단으로 변화하는 계기기 됐다.

저자는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잠실주공아파트단지를 꼽는다. 78년 11월 준공한 잠실주공은 국내 첫 대단위 아파트단지로서 80년대 이후 아파트가 일반화되는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주택이라는 창을 통해 20세기 한국 역사와 풍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당시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문학작품이나 저서, 기사 등을 풍부하게 동원한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희망주택, 부흥주택, 국민주택, 시험주택, 서민아파트, 시민아파트, 새마을주택 등 1950∼70년대 정부 주도로 집중 공급된 서민들의 주택을 최초로 조명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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