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인재(人災).. 계획도 안전도 지켜지지 않은 붕괴사고

전성필,신용일 2021. 6. 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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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찰 등 합동 감식반이 10일 사고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현장의 5층 건물 붕괴사고 원인은 ‘인재’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온다. 사전에 건물 구조와 주변 환경을 골고루 분석해 만든 철거 계획대로 작업이 진행됐다면 철거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인도 방향이 아닌 건물 잔해가 있는 가운데 방향으로 무너졌어야 한다. 안전불감증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하지 않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였다는 지적이다.

10일 광주경찰서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 이후 철거 현장 관계자는 지난 8일 건물의 일부 낮은 부위 철거 작업을 하고, 9일부터 5층 건물의 실질적인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건물은 지상 5층에 지하 1층 규모로 뒤편에는 2층 높이로 별관 형태의 구조물이 붙어있다. 건물의 구조와 관계자 말을 미뤄보면 첫 작업을 시작한 낮은 부위는 뒤쪽 별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철거 작업의 방향이 애초에 도로 방향이 아닌 건물 뒤편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뜻한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굴착기를 올리기 위해서 건물 뒤편에 흙산을 쌓는 순서로 작업이 이뤄졌다면 흙 무게로 인해서 건물이 도로 쪽으로 밀리는 수평 하중이 발생해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도로 쪽부터 철거를 시작했다면 붕괴가 일어나도 그나마 안전한 반대 방향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차량 이동이 있는 도로를 통제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작업의 편의를 고려해 뒤편부터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거 작업이 관할 지자체에 신고된 철거 계획대로 진행됐는지 당국이 세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철거 작업은 굴착기가 4~5층 높이의 폐자재와 흙더미 위로 올라가 건물 뒤편 벽체부터 부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런 방식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수평 하중이 앞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건물의 현재 상태, 구조, 무게중심에 따라 철거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또 철거 현장이 인도와 차도에 인접한 만큼 작업 중 무너지는 사고가 나더라도 가운데 방향으로 쓰러지도록 건물의 어느 부위부터 어떤 속도로 철거할지도 현장에서 관리했어야 한다.

이날 광주 동구청은 철거 업체가 철거 계획을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업체가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에는 안정성 검토 결과와 구체적인 철거 순서가 함께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굴착기 등으로 콘크리트를 파쇄하는 무진동 압쇄공법을 이용해 건축물 옆벽부터 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건물 위층에서 아래층 순서로 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보면 건물은 통째로 옆으로 넘어진다. 이는 철거 작업이 계획처럼 위층부터 아래층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4~5층을 그대로 둔 채로 아래층 부분을 철거하다 수평 하중이 앞쪽(도로방향)으로 쏠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굴착기로 건물을 긁어내는 방식이었다면 건물의 모든 면을 균일하게 깎아내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한다”며 “실제 이뤄진 철거 방식이 철거 계획에 명시됐던 부분인지 당국이 들여다 봐야 한다. 안전을 고려해 만들어진 철거 계획을 따랐다면 인명사고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경찰 수사로 규명돼야 하지만 여러 정황상 해체계획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번 주 중 철거 시공사와 감리자를 사법당국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건물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하더라도 철골 지지대 등의 안전장치라도 마련돼 있었다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때 인도에 심어진 가로수가 완충작용을 해 버스의 전면부가 후면부보다 덜 손상됐다. 이 때문에 버스 뒤쪽에 탔던 9명은 모두 사망했지만, 그나마 앞에 탔던 8명은 중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는 철거 현장과 인접한 인도 및 도로의 경계부에 별도의 안전장치를 설치해뒀다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 철거 현장과 인도 및 도로 경계에는 쇠파이프에 천막을 엮은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다. 가림막은 말 그대로 현장이 외부에서 안 보이도록 하고 먼지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용도에 불과하다. 폭이 3m에 불과한 인도 바로 옆인데도 철골 지지대나 보행자 안전을 위한 철제 구조의 터널은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도 ”향후 재개발이 전국 곳곳에서 이뤄질 예정이니 이번 기회를 통해 대로변 건물의 철거 작업 시 안전장치 설치 의무화 등의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성필 신용일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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