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 vs 대담..원소와 조조의 차이

2021. 6. 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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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23. 관도대전2

조조가 직접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원소를 속이는 사이 이어진 관우의 기습 공격이 성공하면서 조조군은 백마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백마를 포위한 원소군은 물러났지만 조조는 백마에서 농성할 마음이 없었다. 조조군은 백성을 데리고 후퇴했다. 원소는 본대를 이끌고 황하 건너 조조군을 추격했다.

원소는 조조군이 백마의 백성과 치중(말이나 수레에 실은 짐)을 끌고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원소는 신뢰하던 기병 대장 문추를 투입, 느린 조조군을 추격해 포착, 섬멸하게 했다. 문추가 이끄는 원소군 기병이 조조군의 보급용 수레 대열을 급습하자 조조군 장수들은 공포에 빠졌다. 그들은 조조에게 수레를 버리고 후퇴하자고 말했다. 그때 순유가 조조에게 말했다.

“수레를 왜 버립니까? 저걸로 적을 유인하면 됩니다.”

조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보급 수레를 세워 놓고, 기병의 말을 안장을 벗기고 풀어줬다. 원소군이 보기에 조조군이 전투를 포기하고 영락없이 도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추가 이끄는 기병대는 방심하고 보급용 수레 대열을 공격했다. 원소군 주축인 유목 기병은 강한 군대였지만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약탈의 순간이 오면 통제가 안 된다는 점이다. 순유와 조조는 이 점을 노렸다. 조조군은 약탈에 흥분한 원소군 기병이 대오를 잃고 엉망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조조군이 놓고 간 보급품에 원소군은 정신을 못 차리고 약탈에만 집중했다.

산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조는 결정적 순간이 오자 엎드려 있던 기병에게 말을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조조의 기병이 돌진했다. 원소군은 약탈에만 정신이 팔려 조조군 공격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상황을 겨우 파악한 원소군 기병은 재빨리 전선에서 이탈해 안전한 곳까지 달아나 재집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조조의 기병은 거침없이 달리며 문추를 공격해 그를 살해했다. 원소군 최고의 맹장이었던 안량과 문추가 단 두 번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연달아 승리 거뒀지만

▷규모에 밀려 관도로 후퇴한 조조

조조는 잇따라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아직 규모 차이는 여전했다. 원소군의 진격을 멈추기는 힘들었다. 조조는 군을 거둬 관도로 들어갔다. 관도는 정저우와 나중에 송나라 수도가 되는 카이펑시의 중간에 있는 평원이다. 북쪽 황하 만곡부에서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조조는 관도 평원에 성을 짓고 병력을 집결했다. 성안의 병력은 대략 만 명 정도였다. 원소는 황하 강변 모래사장에 병력을 도열시키고, 장사진을 펼쳤다. 진지의 좌우 길이가 수십 리는 넘었다고 한다. 병력 규모는 대략 조조군의 10배였다.

원소군은 진영을 갖추고 정공법으로 대적하기 시작했다. 지하도를 파고, 토산을 세우면서 성을 공략했다. 다만 조조군 저항이 거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원소군이 병력 규모는 컸지만 병사 개개인의 능력은 떨어졌다.

병력 손실이 아까웠던 원소는 육탄 공격을 중지하고 지구전과 소모전으로 전술을 수정했다. 원소군은 조조군 진영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기록에 의하면 화살이 조조군 진영 안으로 비 오듯이 쏟아져 방패로 몸을 가리고 걸어야 했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런 공격으로는 괴롭힐 수는 있어도 승리할 수는 없다. 관도에서 화살에 의한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가까웠다.

원소가 공략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조조는 정예 부대를 내보내 원소의 군량 부대를 습격하거나 원소군 소규모 전투 부대 하나를 기습하는 게릴라 전술을 취했다. 소규모 전투는 대개 조조군이 승리했다. 하지만 규모 차이가 워낙 압도적인지라 조조군도 당장은 원소의 본영을 공격하거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관도 평원에서의 대치는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계속됐다. 원소는 우세해 보이기만 할 뿐 결정적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소부대 전투에서는 계속 패하면서 병력의 누수만 커져갔다.

원소에게 딱 한 번 승리의 기회가 있었다. 관도에 조조의 병력이 집중된 것을 기회로 쉬창 남쪽 여남에서 유벽이 조조를 배신하고 원소 편에 섰다. 원소는 유비를 보내 유벽을 지원하게 했다. 유벽과 유비가 쉬창 근교까지 도달했다. 위기가 닥치자 조조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뒀다. 휘하 장수 중 가장 뛰어난 기병 대장인 조인을 파견했다. 조인은 전격적으로 출전해서 유비를 먼저 격파하고 유벽의 진영을 불태웠다.

이때 유비에게는 관우도 합류한 상태였다. 허도 전투에서 유비·관우·장비가 조인에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패했다. 당시 유비의 군대는 유비가 훈련한 군대가 아니고 원소에게 얻은 군대였다. 이런 군대는 조직력을 믿을 수가 없다.

▶원소 군량 창고 ‘오소’ 급습

▷대담한 조조, 소심한 원소 격파하다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아무리 병력과 물자가 우세하다 해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쟁 상황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원소는 좋은 상황과 병력을 갖고도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 늘 쉬운 전투를 추구하다 병력을 낭비하기 일쑤였다. 안량과 문추가 죽자 더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원소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조조군의 군량이 고갈돼가는 것. 조조군 식량이 다 떨어지면 승리는 원소의 것이었다.

유리한 조건의 원소였지만 그놈의 ‘소심함’이 또 발목을 잡았다. 전사가 되려면 승부의 순간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원소는 전사의 자질이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빙글빙글 돌면서 핵심에 뛰어들지 못했다.

조조군이 군량 부족으로 허덕일 때, 원소 휘하 장수 장합은 오소의 원소군 군량 창고를 미끼로 쓰자고 건의했다. 식량이 부족한 조조의 허점을 노린 전략이었다. 혹시 식량을 잃을까 봐 겁이 났던 원소는 이 제안을 듣지 않았다.

원소가 현상 유지만을 원하며 가만히 있던 사이 승부사 조조가 움직였다. 조조는 휘하 병력 절반을 빼서 오소를 습격했다. 정작 승부를 회피하다 결정적일 때 이상한 객기를 부리거나 쓸데없는 계략을 좋아하는 원소의 단점이 또 발현됐다. 조조군 진지를 습격한답시고 조조 진영 공격 부대와 오소 지역 지원 부대로 병력을 또 나눴다. 더 황당한 것은 조조군 공격 부대는 느린 중무장 기병으로 보내고, 구원군은 경기병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승부를 건 조조는 원소의 구원 부대가 등 뒤에서 다가오는데도 뒤돌아보지 않고 공격에만 집중했다. 오소를 함락하고 군량을 불태웠다. 경기병은 조조군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군량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 부하 장합은 공격을 포기하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이렇게 해서 관도대전은 극적으로 조조군의 승리로 끝났다. 원소는 기주로 철군했지만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하고 말았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2호 (2021.06.09~2021.06.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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