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남양주 수종사..눈에 담고, 마음에 저장할 절경의 고찰

2021. 6. 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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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조안면의 운길산의 높이는 해발 600m이다. 이 산 중턱에 사찰 수종사가 있다. 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인 수종사는 이름 그대로 ‘물과 종이 있는 사찰’이다. 여기에는 그 유래가 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면 끝이 팔당댐이다. 그 전인 스타필드부터 팔당댐까지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그만큼 이 지역은 서울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팔당댐을 지나면 남양주시 조안면이다. 조안면 능내리에는 정약용의 생가 터와 사당이 있다. 공원으로 잘 가꿔진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길이 만난다 해서 두물머리, 즉 ‘양수리’라 불린다. 양수리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풍광도 운치 있지만 이 지역의 산과 물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는 따로 있다. 바로 인근 운길산 수종사다.

조선 세조가 금강산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세조는 한밤중에 은은하고 청아하게 들리는 종소리에 잠이 깼다. 다음 날, 세조는 신하들을 불러 어젯밤에 들린 종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라 했다. 관리들이 운길산 일대를 돌아다니다 바위굴을 발견했다. 굴에 들어서니 안에는 18나한상이 자리하고 있었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샘을 이루고 있는데 그 밑에 종이 있었다고 한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수종사’라 지었다. 물론 ‘전설’이다.

수종사의 시작은 신라 시대라고도 하지만 사실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역사적으로는 1459년에 세조의 명으로 창건했고 1939년 수종사의 석조 부도를 중수하는 과정에서 세조의 고모인 정의 옹주 것으로 보이는 부도가 발견됐다. 그 뒤 절은 세월의 무게에 무너졌는데 1890년 고종 때 풍계혜일 화상이 내탕금을 받아 중창했다. 그리고 1939년에 일조태욱이 대웅전, 영산전 등을 중건했지만 한국 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다. 이를 1974년 혜광 스님이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수종사를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걸어서, 혹은 차를 타고서다. 사실 그 어느 것도 만만치 않다. 꽤나 경사진 길을 걸어야 하고, 차로 오르려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천천히 올라야 한다.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은 도로에서 혹여 내려오는 차와 마주치면 특히 초보 운전자는 진땀을 빼기 일쑤다. 그렇게 오프로드 운전을 강제 체험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물론 끝이 아니다. 일주문, 불이문, 해탈문을 지날 때까지 계속 걸어 올라야 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수종사 경내에 이른다. 경내는 그리 넓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다. 대웅보전, 범종각이 있고, 범종각 옆에는 수령이 500년이라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또 팔각오층석탑이 있는데 아담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춘 모양새다.

수종사에 오르며 눈 호강이 시작된다. 한강과 얌전한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전경을 보고 서거정은 ‘동방 사찰 중 최고의 전망’이라 극찬했다. 정약용 역시 수종사를 자주 찾고 또 머물기도 했다. 초의선사 역시 이곳을 찾아 차를 즐겼다고 한다. 뛰어난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에 자리 잡은 삼정헌에서는 격식 있는 차를 즐길 수 있다. 수종사 가는 길은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숨이 턱턱 차면서도 오르면 눈에 담고 마음에 저장하고 싶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경내 ‘묵언’ 푯말처럼 수종사에서는 잠시 말을 잊어도 좋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매경D B, (경기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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