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사인 단순변사 처리에 가장 분노"

손재호 2021. 6.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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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이 중사 부모 인터뷰
"공군, 딸의 어릴적부터 꿈.. 힘든 상황서도 그만둔다 말 안해"
성추행 피해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아버지가 9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이 중사 추모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도중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성남=이한결 기자


“우리 딸이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어도 저희한테 부사관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만큼 공군은 우리 딸 어릴 적부터 꿈이었는데….”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부모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격정적으로 울분을 쏟아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도 했다. 어머니는 몸을 가누기 힘든 듯 지친 모습을 한 채 간간이 울먹였다.

국민일보는 9일 이 중사 추모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이 중사 아버지 이모씨, 어머니 박모씨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아버지 이씨는 “제가 가장 크게 분노했을 때가 언제인 줄 알아요? 제 딸 사인이 공군에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는 걸 알았을 때예요.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공군 법무실 누군가가 뭉갰을 거에요. 자기들 나름대로 조치 하고 했겠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초 딸이 당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큰 걱정을 할까봐 직접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중사는 이를 남편과 믿었던 공군 상관들에게 먼저 보고했다. 이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이씨는 “딸은 3월 2일 제20전투비행단에서 사건이 발생한 후 상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무척 컸다. 이씨는 “사건 이후 부대에서 우리 아이 어깨를 일부러 툭 치면서 ‘꺼져’라고 하고, 최고 선임들이 없을 땐 소리지르고 욕설도 했다고 합니다. 군이 심리적으로 통제를 한 것”이라고 했다.

참다못한 딸이 먼저 고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고모가 ‘상부에 보고하라’며 군에 강력히 항의해 그제야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분리만 되고 이후 어떤 조치도 없었다. 이 중사 부모는 제일 먼저 딸을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3개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군사경찰에 제출하며 변호사 조력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5월이 다 돼서야 이뤄졌다.

공군은 이 중사에게 청원휴가를 주면서도 상담과 재판 준비,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관사에 머물도록 했다. 이씨는 “밖에 나가 부모와 있으면 회유 등 자기들의 목적에 어긋나니까 부대에 남아 있게 한 것 같다”고 눈물을 떨궜다.

이 중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남겼다. 영상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이씨는 “이 얘기를 할 땐 너무나도 괴롭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는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딸을 부모가 직접 보호하면서 데리고 있지 못했던 사실이 한이 된다고 했다.

성추행 피해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아버지가 9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이한결 기자


이씨는 인터뷰 내내 물을 연거푸 들이켜면서 화를 삭였지만 딸의 어린시절 얘기를 할 땐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며 추억에 잠겼다. 그는 “공군은 우리 아이의 어릴 적 꿈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그만두고 싶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있는 그대로 전하면 마음 아파할까 봐 자세한 건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나 또한 딸 아이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회상했다.

인터뷰 진행 전 이 중사 부모는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를 지켜봤다. 이씨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과한 데 대해 “피해자 마음과 동떨어져 있고, 질책을 순간순간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며 “심심한 유감, 조의 이런 건 다 믿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은 가해자인 장모 중사의 엄벌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 3월 군사법원에 제출한 11장짜리 탄원서도 내밀며 “합의는 없다”고 했다.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에 묻어난 탄원서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씨는 장 중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용서해 달라는 전화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다. (지금도) 그냥 뭉개질 줄 알고 있다”면서 “우리 아이가 느낀 고통을 가해자는 절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중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이들에게 유사한 피해를 본 여군들에게서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어머니 박씨는 “군대 내에 우리 아이 같은 피해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처음엔 ‘우리 아이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 싶었는데 ‘나도 그런 처지였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우리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묻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아이의 명예를 찾고 한을 풀어주는 동시에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에 대한 나의 도리라 생각한다”며 어딘가에 있을 피해자들을 향해 “엄마아빠가 사회를 바꿀 동안 잠시 용기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폭력을 당해도 가만히 있으란 게 아니다. 괜히 용기를 내면 (우리 아이처럼) 불이익, 따돌림을 당하고 원하는 대로 무마가 안 될 수도 있다”며 “우리 같은 부모가 같은 목소리를 내서 이런 문제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줘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 중사 부모는 부대 내 수사기관이 상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특성을 언급하며 외부기관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지휘관이 올바른 방향으로 대응해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부대에 복귀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피해자를 적극 지원했을 때에 대한 보상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성남=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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