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억 품고.. 출렁이는 금빛 물결

남호철 2021. 6. 9. 21: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곧 없어질 섬' 화성 수섬과 시화호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 인근 시화호 간척지를 찾은 여행객들이 저녁노을에 황금빛으로 물든 삘기꽃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다. 광활한 평원에 흰색 솜털 모양으로 피어난 삘기꽃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시화방조제가 1994년 2월에 완공되면서 경기도 안산시와 화성시 사이에 생긴 호수가 시화호다. 시화호의 일부인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와 고정리 일대는 거대한 간척지로 지금은 물이 거의 없는 육지가 됐다. 시화호 안에는 사람이 사는 섬이 3개 있었다. 어섬, 형도(衡島), 우음도(牛音島)로 모두 화성시 송산면 지역이다.

이 일대에 ‘한국의 세렝게티’ ‘한국의 사바나’로 불리는 수섬이 있다. 수섬은 한때 서해의 조그만 섬이었다. 시화호 간척 사업 후 육지와 수섬 사이의 넓은 갯벌이 초지로 바뀌면서 ‘평원 위의 섬’이 됐다. 한때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초지로 활용됐다. 군데군데 불긋불긋한 칠면초가 과거 이곳이 바다였음을 대변해준다.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에 요즘 삘기꽃이 장관을 이룬다. 시화방조제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넓디넓은 짭짤한 땅에 뿌리를 내린 삘기가 해마다 가득가득 피어난다. 다년생 풀인 띠의 어린 꽃대를 삘기라 부른다. 백모화(白茅花)라고도 하는데 씹으면 부드럽고 달착지근해 보릿고개 시절에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먹었다고 한다.

수섬 주변은 너무 넓은 데다 따로 내어놓은 길도 없다. 접근하기 가장 가까운 곳은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다. 동네 끝에서 광활한 ‘초원’ 위에 수섬이 보인다. 습지여서 발목까지 물에 잠길 수 있는 ‘어설픈’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한국의 세렝게티’로 불리는 푸른 초원 가운데 자리한 수섬.


수섬에 올라서면 멀리 철탑이 보이고 형도가 마주 보인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흰색 솜털 같은 삘기꽃은 한낮 바람과 한판 노닌다. 이국적인 풍경에 모델을 대동한 촬영팀도 눈에 띈다.

해가 서산에 기울면 노을빛에 주변이 붉게 물든다. 삘기꽃도 황금색으로 반짝이며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바람에 몸을 싣고 흔들리면 태양을 품은 파도를 연상시킨다. 저 멀리서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가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색다른 경관을 찾아다니는 자전거 라이더와 백패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수섬은 한여름엔 푸른 초원으로, 가을엔 단풍 든 염생식물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 수섬이 개발로 인해 곧 사라진다고 한다. 송산그린시티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면 주변 풍경이 바뀌게 된다. 이미 우음도 쪽에서 길게 뻗은 도로가 이곳 풍경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연일 찾아들고 있다.

수섬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형도는 시화호에서 가장 큰 섬이다. 넓이 0.64㎢에 해안선 길이 3.2㎞였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들어왔는지를 알아보는 기준이 되는 섬이라는 의미로 ‘저울 형’(衡)자를 썼다. 조선시대에는 봉수대도 있었다. 6·25전쟁 이후 주민들이 정착했다. 섬의 최고 높이는 140m였지만 시화방조제 등 간척 사업에 사용된 골재를 얻기 위해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대부분 깎여 나갔고 산허리가 잘려져 있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우음도 일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우음도다. 섬 정상에는 시화호 물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태를 한 ‘송산그린시티 전망대’가 우뚝하다. 이곳에서 광활한 풍광을 조망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문을 닫았다.

이곳 넓은 평원도 삘기와 갈대로 채워져 있다. 그 사이에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들의 부화되지 않은 알 화석지가 태곳적 신비를 보여준다. 12개 지점에서 약 30개의 알둥지와 200여개의 공룡알 화석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중국 몽골 등지에서 주로 발견됐지만 국내에선 처음이었다.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됐다.

공룡알 화석지 방문자센터 앞에서 시작된 탐방로가 약 1.5㎞ 뻗어 있다. 거대한 평원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색다르다. 공룡알 화석은 발굴 당시 그대로 공개돼 있다. 둥근 알의 형태가 제법 뚜렷하다. 돌출된 바위에 박힌 알을 찾아내는 것도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재미있다.

입구 방문센터에는 전시실, 전망대, 무료 주차장 등이 갖춰져 있다. 전시실엔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라는 의미의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화석이 있다. 2009년 전곡항에서 제1회 세계요트대회 개최를 준비하던 화성시청 공무원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 세계에서 이전까지 발견된 적이 없던 새로운 종류의 공룡이다. 코리아케라톱스는 두 발로 걸어 다니던 뿔공룡이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네 발로 걸어 다니게 되는 과정의 중간 단계에 있는 공룡이다.

화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