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맞서 반도체·배터리 동맹 강화"..삼성·SK·LG 콕 집었다

박현영 2021. 6. 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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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희토류 등 필수 광물, 제약 4개 분야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대책을 100일 간 검토한 뒤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희토류, 제약 등 4개 핵심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청사진을 담은 보고서를 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해법으로는 미국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것과 함께 한국·일본·독일 등 기술력 있는 국가와 '경제 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이들 4개 분야의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100일 간 검토한 뒤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백악관이 작성한 250쪽 분량 보고서 제목은 '공급망 회복력 구축, 미국 제조업 활성화, 광범위한 성장 촉진'이다.

보고서는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안전과 지속 가능성, 탄력성 대신 효율과 저비용을 우선시하면서 미국 내 제조 역량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공급망 리스크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제조 역량이 해외로 옮겨가면서 연구개발(R&D)과 산업 공급망도 따라갔다"고 지적했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에 투자하는 대신 필수 품목의 생산 역량을 해외로 흘려보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그 결과 "미국이 4개 분야 부품을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세계 경제가 첨단 반도체 생산의 92%를 대만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은 첨단 배터리 셀 제조 역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반도체와 자동차용 배터리의 미국 내 제조와 R&D에 정부가 앞장서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발표한 '미국 일자리 계획' 에 자국 내 반도체 제조 및 R&D 지원에 500억 달러를 배정해 놓은 상태다.

백악관은 이 재정 '마중물'을 기반으로 국내외 기업의 투자와 협력을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이다. 주요 한국 기업들도 핵심 파트너로 지목됐다. 이날 보고서 본문에만 삼성은 28차례, SK는 11차례, LG는 3차례 각각 언급됐다.

피터 해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제경제 및 경쟁력 선임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외국 기업과 미국 기업 모두 이곳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권장한다"면서 "이미 인텔과 삼성, 글로벌파운드리 등 여러 해외 및 미국 기업들이 이곳에 생산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이 최근 17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 홀로 공급망 취약성을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에서의 제조 확대 뿐만 아니라 동맹 및 동반자 국가와 협력하고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일본, 호주, 인도가 포함된 '쿼드' 국가나 주요 7개국(G7) 국가를 언급하며 외교적 관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해럴 선임국장은 유럽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가 전날 독일에 자동차용 반도체 공장을 신설한 것을 언급하며 "당장 글로벌 공급부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환영했다.

자동차용 배터리 부문에서는 미국 내 공급망 개발을 위한 10년짜리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신규 기업의 진출을 돕기 위해 170억 달러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달 말 부문별 대표가 참석하는 '배터리 라운드 테이블'도 열 예정이다.

백악관 보고서는 글로벌 자동차용 배터리 업계 현황을 설명하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부 지원금에서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희토류 등 필수 광물은 미국 내 생산에 시동을 걸었다. 내무부는 각 부처로 구성된 실무그룹을 구성해 미국에서 생산하고 가공할 수 있는 필수 광물을 파악한 뒤 생산을 늘리기 위한 국제 투자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네 분야 중 제약 분야는 가장 분명한 대책이 제시됐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필수 의약품 목록 가운데 50~100 종을 추려 미국 내 생산을 위한 민관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했다. 공급이 달리는 핵심 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위해 6000만 달러를 정부가 투자할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의료진용 마스크, 장갑, 면봉 등 개인보호장비(PPE)가 부족했던 경험이 이번 공급망 보고서로 이어진 것과 무관치 않다.

브라이언 디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미 공영방송 NPR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경제와 우리의 경제적 힘이 다시는 팬더믹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위험(risk)과 위협(threat)의 상황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또 필수 품목 공급망을 침해하는 불공정 무역 행위를 벌주기 위해 미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하는 '무역 기동타격대’를 꾸리기로 했다. 공급망에 타격을 주는 행위에 즉각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주로 중국을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추진한 '전방위 무역전쟁'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동맹과 동반자 국가와 무역전쟁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구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품목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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