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사 부모 "내 딸,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 말한 적 없었다"
"군, 단순변사 처리했을 때 가장 분노"
"사건 후 부대에서 계속 압박 회유"
“우리 딸이 그렇게 힘든 상황이었어도 저희한테 부사관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만큼 공군은 우리 딸 어릴적부터 꿈이었는데….”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부모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격정적으로 울분을 쏟아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도 했다. 어머니는 몸을 가누기 힘든 듯 지친 모습을 한채 간간이 울먹였다.
국민일보는 9일 이 중사 추모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이 중사 아버지 이모씨, 어머니 박모씨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아버지 이씨는 “제가 가장 크게 분노했을 때가 언제인줄 알아요? 제 딸 사인이 공군에서 단순변사로 처리됐다는 걸 알았을 때에요.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공군 법무실 누군가가 뭉갰을 거에요. 자기들 나름대로 조치 하고 했겠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초 딸이 당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큰 걱정을 할까봐 직접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중사를 이를 남편과 믿었던 공군 상관들에게 먼저 보고했다. 이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이씨는 “딸은 3월 2일 제20전투비행단에서 사건이 발생한 후 상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았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무척 컸다”고 했다. 그는 “사건 이후 부대에서 우리 아이 어깨를 일부러 툭 치면서 ‘꺼져’라고 하고, 최고 선임들이 없을 땐 소리지르고 욕설도 했다고 합니다. 군이 심리적으로 통제를 한 것”이라고 했다.
참다못한 딸이 먼저 고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고모가 ‘상부에 보고하라’며 군에 강력히 항의해 그제야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분리만 되고 이후 어떤 조치도 없었다. 이 중사 부모는 제일 먼저 딸을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3개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군사경찰에 제출하며 변호사 조력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5월이 다 돼서야 이뤄졌다.
공군은 이 중사에게 청원휴가를 주면서도 상담과 재판 준비,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관사에 머물도록 했다. 이씨는 “밖에 나가 부모와 있으면 회유 등 자기들의 목적에 어긋나니까 부대에 남아있게 한 것 같다”고 눈물을 떨궜다.
이 중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남겼다. 영상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이씨는 “이 얘기를 할 땐 너무나도 괴롭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는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딸을 부모가 직접 보호하면서 데리고 있지 못했던 사실이 한이 된다고 했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물을 연거푸 들이키면서 화를 삭였지만 딸의 어린시절 얘기를 할 땐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띄며 추억에 잠겼다. 그는 “공군은 우리 아이의 어릴 적 꿈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그만두고 싶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있는 그대로 전하면 마음 아파할까 봐 자세한 건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는 “나 또한 딸 아이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회상했다.
인터뷰 진행 전 이 중사 부모는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를 지켜봤다. 이씨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과를 한 데 대해 “피해자 마음과 동떨어져 있고, 질책을 순간순간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며 “심심한 유감, 조의 이런 건 다 믿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은 가해자인 장모 중사의 엄벌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 3월 군사법원에 제출한 11장짜리 탄원서도 내밀며 “합의는 없다”고 했다.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에 묻어난 탄원서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씨는 장 중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용서해달라는 전화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다. (지금도) 그냥 뭉개질 줄 알고 있다”면서 “우리 아이가 느낀 고통을 가해자는 절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죄가 있으면 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중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이들에게 유사한 피해를 입은 여군들에게서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어머니 박씨는 “군대 내에 우리 아이 같은 피해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처음엔 ‘우리 아이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 싶었는데 ‘나도 그런 처지였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우리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묻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아이의 명예를 찾고 한을 풀어주는 동시에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에 대한 나의 도리라 생각한다”며 어딘가에 있을 피해자들을 향해 “엄마아빠가 사회를 바꿀 동안 잠시 용기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폭력을 당해도 가만히 있으란 게 아니다. 괜히 용기를 내면 (우리 아이처럼) 불이익, 따돌림을 당하고 원하는 대로 무마가 안 될 수도 있다”며 “우리 같은 부모가 같은 목소리를 내서 이런 문제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줘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 중사 부모는 부대 내 수사기관이 상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특성을 언급하며 외부기관과의 연결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 피해가 발생했을 때 지휘관이 올바른 방향으로 대응해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부대에 복귀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피해자를 적극 지원했을 때에 대한 보상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성남=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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