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가 열어젖힌, 이 시대 젊은이들의 '독립선언'
[이정희 기자]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은 홍상수 감독은 이후로도 오래도록 감독의 세대를 대변하는 대표격이었다. 그랬던 홍 감독이 자신의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이야기에 대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 인트로덕션 |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
그간 감독이 만든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감독 자신처럼 감독입네, 혹은 대학 강사입네, 시인입네 등등 그래도 대학을 나와 머리에 든 건 좀 있으며, 그 걸로 밥벌이를 하고 살아가던 '존재'들이었다. 이른바 '지식인', '인텔리'들이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첫 영화에서부터 2018년 <강변 호텔>에 이르기까지, 그 '먹물' 지식인들을 자신의 지적 배움과는 달리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수컷으로 그려왔다. 이율배반적인 인물들로 말이다. 그것을 통해 감독은 동시대인들, 그 중에서 시대를 대변한다는 남성들이 가진 모순을 자아비판해왔다. 결국 홍상수의 페르소나인 영화 속 주인공은 예의 숨길 수 없는 본능적 행각을 벌이며 평생을 전전한 끝에 모텔 화장실에서 쓸쓸하게 생을 다한다(<강변 호텔>). 홍상수가 본 그들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자기 세대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은 홍 감독은 <도망친 여자>를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의 모습에 눈을 돌리더니, 지난 5월 27일 개봉한 <인트로덕션>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해 말문을 연다.
▲ 인트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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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이야기에는 한 명의 아버지와 두 명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아버지(김영호 분)는 한의사다. 그는 환자를 보기에 앞서 간절히 기도한다. 자신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그런데 어쩐지 그의 기도는 절실한데, 보면 볼수록 예의 홍상수 감독 영화 속 남자들처럼 자의적이어 보인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 영호가 찾아온다. 하도 데면데면하여 누군가 했는데 간호사가 아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지만 매우 오랜만에 본 사이, 심지어 알고보니 아버지가 불렀다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하냥 기다리게만 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아니면 말고 식 해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심리적 트라우마에 '홍길동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즉,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말인즉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버지'세대는 '아버지'라 부르기에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못나서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도 남의 손으로 이루어내고, 그나마 독립을 했더니 자기들끼리 죽자고 싸우고, 도대체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인트로덕션>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 부끄러운 아버지를 지양하겠다고 했던 세대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들을 불러 놓고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자기에게 자꾸 기회를 달라고 기도를 한다. 아버지가 되어서도 홍상수의 세대는 여전히 '입'만 살았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 대신 아버지를 찾아왔던 연극 배우의 한 마디에 힘입어 배우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런데 그 한 마디라는 게 '모호한 충고'다. 그저 배우할만한 얼굴이라는 '평범한 촌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한 마디에 기대어 배우가 되겠다고 했던 아들은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 자신이 선택한 길에 회의를 갖게 된다.
그런 아들을 닥달하여 이른바 대배우와의 '상견례'를 마련한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길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는 아들이 영 마땅치 않다. 그래서 외딴 '강변 호텔'이 있는 식당으로 아들을 불러 대배우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청한 대배우가,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병원에서 손님으로 왔던 사람이다. 이 정도면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싶다. 한 술 더 떠서 여자 친구 때문에 키스신이 저어된다는 아들의 고백에 대배우란 사람은 술이 얼콰하여 '사랑지상주의'를 부르짖는다. 말이 아들을 향한 충고이지, 그 옆에 있는 아들의 어머니를 향한 고백같은.
그리고 또 한 명의 어머니는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패션을 공부하겠다는 딸과 함께 독일로 온 어머니는 딸을 자신이 아는 지인의 집에 머물게 한다. 그림 공부를 하는 여성이라 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지만, 어머니를 대할 때와 딸을 대할 때 지인의 태도가 다르다.
▲ 인트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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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젊은이들의 '이유기'
예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처럼 자기 잘난 맛으로, 자신들이 배운 것을 코에 걸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듯 굴었다. 하지만 <인트로덕션>은 자기 자신들에 빠져있는 부모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젊은이들로 시작된다.
영화 속 사랑하는 주원(박미소 분)을 찾아 무작정 독일까지 날아간 영호는 한의사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자신도 독일에서 공부나 할까 한다. 아버지를 찾아가 우연히 배우할 얼굴이라는 말을 듣곤 어머니처럼 배우의 길에 나서보기도 한다. 독일까지 패션을 공부하러 왔다는 주원의 선택 역시 어쩐지 미덥지 않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이 때문에 키스신이 저어된다는 영호에게 이제는 연인이 없다. 사랑하는 이가 보고싶어 독일까지 가고, 그녀를 따라 독일에서 공부라고 하겠다던 그 사랑은 꿈속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은 그렇게 젊은이들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댈 구석이 못 되는 부모들, 그런데도 나서는 부모들에 기대보려 했지만, 결국 차가운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인, 스스로 가볼 수밖에 없는 그런 젊은이들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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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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