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일장춘몽이었나

명순영 2021. 6. 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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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나.

지난해 우리나라 주식 시장 급등세를 이끌었던 바이오 산업 얘기다.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함께 한창 주가를 끌어올렸던 진단기기 업체는 그 존재감을 잃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신약 개발이나 기술수출 등 호재성 뉴스가 끊긴 지도 오래다.

오히려 악재만 쌓여간다. 코오롱티슈진은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허위 기재 혐의 파문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2017년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도 나락으로 빠졌다. 임상 중단에 이어 전 경영진이 횡령·배임 혐의를 받으며 지난해 5월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유전자 치료제로 각광받던 헬릭스미스는 임상 실패, 고위험 투자 손실, 주주와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바이오 산업에서 우울한 소식이 이어지자 물밀듯 쏟아졌던 자금줄도 말라가는 분위기다.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으로서의 K바이오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춘 걸까.

백신 본격화 속 치료제 개발 ‘굿뉴스’ 실종 기술수출 ‘뚝’…경영진 비리에 신뢰 바닥

코로나19는 다양한 산업을 초토화했다. 유통, 여행 등이 그랬다. 하지만 위기 국면에 전례 없는 기회를 얻은 산업도 있다. 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씨젠은 2019년 매출 1000억원에 미치지 못한 ‘작은’ 회사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에 진단키트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매출 1조원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씨젠은 매출 1조1252억원, 영업이익 676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60%에 달하고, 당기순이익은 5031억원이나 된다. 콧물이 아닌 타액(침)으로 정확하게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할 수 있는 제품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씨젠은 바이오가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진단기기는 물론 바이오시밀러, 치료제 등이 지난해 바이오 붐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백신 보급에 치료제 동력 잃었나

▷2분기 기술수출 소식마저 사라져

하지만 올해 2분기 들어 분위기가 확 돌아섰다. 호재는 없고 악재만 넘쳐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주가도 무너졌다. 지난해 말 5500을 넘어섰던 KRX헬스케어지수는 5월 말 4400대까지 추락했다. KRX헬스케어지수는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제약·바이오 업체 주가를 기초로 산출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열쇠인 치료제와 백신에서 이렇다 할 굿뉴스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소식이 전해지며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셀트리온 항체 치료제 ‘렉키로나주’가 첫 조건부 허가를 받은 이후, ‘2호 치료제’ 후보로 꼽혔던 유력 제약 회사들의 조건부 승인이 연이어 불발됐다.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백신 보급이 크게 늘어나며 치료제 경제 효과가 떨어졌고 개발 의지가 한풀 꺾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대표 제약사 GC녹십자부터 좌절을 맛봤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개발한 혈장 치료제 ‘지코비딕주’의 임상시험 결과에 한계가 있다”며 조건부 허가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 종근당 역시 지난 3월 급성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의 식약처 조건부 허가가 불발됐다. 단기간 주가가 급등하며 지난해 20만원대까지 올랐던 신풍제약은 6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신풍제약은 지난해 5월 식약처가 이 회사의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에 대해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2상 시험을 승인해주며 주가가 급등한 바 있다.

최근 기술수출 등 실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점도 바이오 산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K바이오의 성공 모델인 ‘기술수출’ 성과가 있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올해 1분기에만 4조원이 넘는 기술수출을 이뤄내며 지난해(약 10조원) 대비 약 40%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2분기에는 이렇다 할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임상 실패 소식도 찬물을 끼얹었다. 신라젠은 2017년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라섰던 대표 바이오 기업이다. 그러나 2019년 8월 2일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펙사벡의 글로벌 간암 임상 3상 중단’ 권고를 받으며 제동이 걸렸다. 또 다른 스타 기업 헬릭스미스는 2019년 9월 핵심 파이프라인 엔젠시스(VM-202)의 임상 3상에 실패했다.

임상 3상은 신약 상업화를 위한 최종 관문이다. 그러나 자본이 부족한 한국 바이오 기업이 임상 3상을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도 국내 바이오 기업이 직접 임상 3상을 고집하다, 최악의 사태를 맞고는 한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임상 3상에서 성공하려면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다. 섣불리 임상 3상에 도전하지 말고 글로벌 제약사와 제휴하거나, 미리 기술수출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임상 3상은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결론 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바이오 산업 순항에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성’에도 크게 금이 갔다. 씨젠은 지난 3월 금융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5억원을 부과받았다. 2011~2019년 실제 주문량을 초과하는 과도한 물량의 제품을 대리적으로 임의 반출하고 이를 전부 매출로 인식해 매출을 과대 (또는 과소) 계산했기 때문이다.

신라젠은 전 경영진이 횡령·배임 혐의를 받으며 지난해 5월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헬릭스미스는 파생상품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다 원금을 돌려받지 못해 논란을 빚었다. 최대주주 김선영 대표가 소액주주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도 어수선한 대목이다.

보호예수 기간 해제를 기다렸다는 듯 대주주가 지분을 대량 매각하는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하며 기업공개 새 역사를 쓴 SK바이오팜 블록딜(대량 매매) 사건이 대표적이다. SK바이오팜 지주회사인 SK는 지난 2월 주식 11%(860만주)를 시간 외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지난해 7월 상장과 함께 고공행진하던 주가는 11만원대로 무너졌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바이오주 급등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다. 백신과 치료제 보급으로 바이오 산업 모멘텀이 떨어졌다. 눈에 띄는 임상 데이터가 없고 상반기 기업 실적이 지지부진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신약 개발 노력은 진행형

▷벤처 투자·M&A 활성화 기대

물론 K바이오 상승세가 막을 내렸다고 단정 짓기 이르다. 증권가 표현을 따르면 ‘쉬어 가는’ 정도다. K바이오 신약개발 노력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올바이오파마의 글로벌 파트너사 이뮤노반트는 IMVT-1401(한올바이오파마 연구명 HL161)의 자가면역질환 치료 항체 임상시험을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2월 갑상선 안변증 임상 2b상에서 투약 환자들이 저밀도지단백(LDL) 수치 상승을 보이자 임상을 일시 중단한 이후 재개한 것이다.

강스템바이오텍은 아토피 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에이디주’의 임상 3상에 재도전한다. 코오롱티슈진은 연내 미국에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임상 3상에 다시 들어간다. 올 4분기 환자 투약을 재개하는 것이 목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독자개발 대신 협업에 눈을 돌려 성공 확률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전문 업체를 따로 세워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를 넓히거나, 실력과 기술이 있는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형태로 리스크 헤지에 나섰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기업 메디포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메디포스트는 지난 5월 2일 제대혈 유래 면역세포 치료제 전문 개발 회사 이뮤니크를 설립했다. 메디포스트가 제대혈 유래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이뮤니크는 T세포와 NK세포를 활용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와 면역항암제·치료제에 집중한다.

동아쏘시오그룹 계열사 에스티팜도 지난 5월 5일 미국 샌디에이고에 신약 개발 전문 기업 레바티오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미국 샌디에이고는 화이자, 머크,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의 연구소와 여러 바이오테크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 연구와 기술수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바이오 클러스터에 진출한 것이다.

바이오벤처를 활용하기도 한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9월 아이엔테라퓨틱스라는 자회사를 새로 세웠다. 아이엔테라퓨틱스는 대웅제약의 신약 개발 플랫폼과 비마약성 진통제, 난청 치료제,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한다. 동화약품은 혁신형 치료 재료 전문 기업 넥스트바이오메디컬에 4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이연제약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반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해 엠디뮨과 바이오드론 약물 전달 플랫폼 협업 관계를 맺었다.

최근 바이오 기업 M&A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포인트다. 자금이 탄탄한 대기업이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바이오 기술에 관심을 가지며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태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제약사가 과거 화려했던 위상에 안주하다 경쟁력을 잃었다”며 “한국 제약·바이오도 이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에 인정받을 신약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순영·류지민·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2호 (2021.06.09~2021.06.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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