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메이웨더, 프로 0승1패 유튜버 못 눕혔다

8라운드 이벤트 매치서 유튜버와 무승부
선수 자존심 잃었지만 1111억원 수익 '대박'
동생 제이크 폴과의 대전 가능성도 열어놔

“난 더 이상 21세도, 25세도 아니다.”

프로 전적 50승 무패, 27KO승. 대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전설적인 복서도 나이와 체격 차 앞에선 무기력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44)가 자신을 조롱하고 도발한 팔로워 2300만명의 미국 유명 유튜버 로건 폴(26)과 글러브를 맞댔지만, 시원한 KO승을 거두지 못하며 ‘선수로서’ 망신당했다.

메이웨더는 7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린 8라운드 복싱 이벤트 매치에서 3년여 만에 링에 복귀했다. 이날 경기는 체급 차이를 이유로 플로리다주 체육위원회가 공식 경기로 승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심판 판정이 존재하지 않아, 메이웨더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8라운드 이내에 폴을 KO시켜야 했다.

메이웨더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폴이 고교시절 레슬링과 미식축구를 경험했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뛴 경력이 있었지만 프로 복싱 무대에선 무승 1패의 전적만 갖고 있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반면 메이웨더는 링 위에서 수많은 복서들을 거꾸러뜨리며 사상 최초로 5체급을 정복한 왕년의 슈퍼스타였다.

경기 내용은 예상 외였다. 자신보다 18살이나 어린 데다 15㎝가 크고 16㎏이 무거운 폴(188㎝·86㎏)을 상대로 메이웨더는 2라운드까지 가드를 올리고 탐색전을 이어갔다. 반면 경기 전 “한 번의 펀치로 메이웨더를 반으로 쪼개버릴 수 있다”고 원색적인 도발을 했던 폴은 메이웨더의 가드 위로 펀치 세례를 퍼부으며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였다.

노련한 메이웨더는 3라운드부터 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폴의 공격을 특유의 숄더롤 동작으로 흘려보내고, 육중한 레프트를 폴의 안면에 둔탁하게 적중시켰다. 집요하게 바디를 공략하며 체력이 빠진 폴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계체 후 “메이웨더는 지면 전부를 잃지만 난 재미로 하는 일”이라고 실실 웃기도 했던 폴은 비기기 위한 전략을 정확히 체득해온 모습이었다. 6라운드 이후엔 긴 리치를 활용해 왼손 잽을 뻗어 메이웨더의 전진을 차단했고, 레슬링으로 갈고 닦은 클린치 기술로 파고드는 메이웨더를 꼭 껴안아 큰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접근전을 완전히 차단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7라운드 이후엔 화가 나 고함을 지르기도 한 메이웨더와는 달리, 기세가 오른 폴은 경기 종료 직전 글러브를 낀 손을 빙빙 돌리며 메이웨더를 자극했다. 결국 공이 울렸고, 경기는 무승부 선언됐다. 하지만 전설적인 복서를 상대로 8라운드나 버틴 폴이 마치 승리한듯 기쁨을 만끽했다.

복싱 링 위의 ‘선수 메이웨더’는 자존심에 흠집을 입었지만, 인생이란 거대한 링 위 ‘인간 메이웨더’는 이날 경기를 통해 진정한 승자로 거듭났다. 메이웨더는 인기 유튜버와의 한 경기를 통해 이미 3000만 달러(약 333억원)을 챙겼다. 대전의 페이퍼뷰(PPV)에 따라 수익은 1억 달러(약 1111억원)까지 불어난다. 2000만달러(약 222억원)를 챙긴 폴의 5배 가량 벌어들인 것.

자본주의 사회, 프로 스포츠 선수의 가치가 돈으로 평가 받는다는 걸 고려할 때 각종 이벤트 매치도 마다하지 않는 메이웨더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기억될 만하다. 메이웨더는 복싱 스타 매니 파퀴아오(약 2330억원), UFC 스타 코너 맥그리거(약 2945억원), 킥복서 나스카와 텐신(약 90억원)과 이벤트 매치를 펼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2010~2019년 약 1조650억원의 수익을 올려 포브스 선정 2010년대 가장 돈을 많이 번 스포츠 선수로 꼽혔을 정도.

이번 대전도 로건 폴과 역시 구독자 2000만명의 전직 복서 출신 유튜버로 활동 중인 동생 제이크 폴의 연이은 도발로 성사되긴 했지만, 최근 도박으로 진 빚이 약 580억원으로 알려진 메이웨더 입장에선 두 형제가 고마웠을 법도 하다. 메이웨더는 경기 후 “폴의 경기력에 솔직히 놀랐다. 좋은 운동선수고,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치켜세우면서 “제이크 폴과의 경기 가능성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며 또 다른 ‘돈 벌이 매치’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