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비 0원, 가게 1+1..초저가 창업의 유혹

노승욱 2021. 6. 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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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 불황에 거품 확 빠진 프랜차이즈

코로나19 사태로 외식 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프랜차이즈 시장도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프랜차이즈 박람회, 창업 설명회 등의 행사가 제한된 데다 외식업 불황 장기화로 창업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프랜차이즈 본부들은 ‘초저가 창업’을 내세우며 가맹점 모집에 나서고 있다. 가맹비, 교육비 등 각종 비용을 면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아도 1000만~2000만원대에 창업할 수 있다고 알린다. 전문가들은 거품을 제거한 합리적 비용인지, 혹은 다른 비용에 전가하는 조삼모사식 지원인지 꼼꼼히 따져보라고 조언한다.

외식업 불황 장기화로 창업 리스크가 커지자 프랜차이즈들이 ‘창업비 제로(0원)’ 등 초저가 창업을 내걸며 가맹점 모집에 나섰다. 불필요한 거품 제거로 인한 비용 절감은 긍정적이지만, 쥐어짜기식 비용 축소나 숨은 비용 전가 등 위험 요인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은 편의점 가맹 모델을 치킨집 창업에 적용한 카우보이치킨 매장 전경. <최영재 기자>
▶‘초저가 창업’ 내건 프랜차이즈 봇물

▷창업비 0원, 1+1…비용 거품 없앴나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매년 1만~3만개씩 늘어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창업 수요가 많던 인기 외식 프랜차이즈 본부는 15평 안팎 매장을 창업하는 데도 최소 5000만원 이상이 소요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인테리어나 조리 장비값이었다. 브랜드 통일성을 위해 지정된 업체에서 신규 제품으로 구입해야 한다며 강권, 쏠쏠하게 이윤을 남겼다.

요즘은 달라졌다. 코로나19 불황에 1억여원을 들여 창업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이에 최근 프랜차이즈들은 비용 거품을 제거한 새로운 창업 모델을 개발, 점주 부담 낮추기에 나섰다.

지난해 말 첫 가맹점을 연 ‘카우보이치킨’이 대표적이다. 가맹비, 교육비, 개발비 명목으로 총 2900만원만 내면 점포 보증금, 권리금부터 인테리어, 설비까지 모두 제공하는 ‘원스톱 창업’을 표방한다. 예비 점주가 원하는 지역과 창업 시기를 밝히면 해당 상권의 적정 부동산 매물 후보를 3~5개 이상 보여주고, 점주가 선택하면 본부가 직접 임대차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점주는 매장 월세와 로열티(매출의 5%)만 부담하면 돼 초기 창업비가 크게 줄어든다. 물류보증금 500만원은 보증보험으로 대체했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다. 초저가 창업에는 조건이 붙는다. ‘휴대폰 약정’처럼 영업 기간 3년을 채워야 한다. 이를 어기고 중도 폐업하면 3000만원 이내 위약금이 발생한다. 5년 약정 조건으로 인테리어비를 본부가 지불하고, 이를 어길 시 남은 계약 기간에 따라 인테리어 감가상각분을 요구하는 ‘편의점 가맹 모델’을 치킨집에 적용한 것이다.

“본부가 떠안은 점포 임차 리스크와 명도 비용 등을 점주가 조금씩 나눠서 지는 방식이다. 점주가 다음 점주에게 인계하고 나가면 위약금은 안 내도 된다. 장사를 잘해서 가게가 활성화되면 본부로부터 임차권을 인수할 수도 있다. 그럼 로열티는 매출의 5%에서 1.1%로 줄어들고 다음 점주에게 권리금도 받을 수 있다. 실제 현재 30여개 가맹점 중 2개점 점주가 매장을 인수해서 운영 중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 초기에 너무 비싸게 창업해 망하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고안한 가맹 모델이다. 이동통신 대리점을 이런 방식으로 100여개 운영해본 결과, 성과가 좋아서 외식 프랜차이즈에도 적용하게 됐다.”

카우보이치킨을 운영하는 박민규 HM Inc 부사장의 설명이다.

아예 창업비가 ‘제로(0원)’라고 홍보하는 곳도 적잖다. 일품양평해장국, 떡볶이의품격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맹비, 교육비, 로열티, 물류 보증금, 감리비, 광고 분담금 등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알린다. 인테리어, 장비 등은 기존 집기를 재활용하거나 자율 시공하면 된다. 단, 기존 집기가 없는 신규 창업이라면 본부에 시공을 의뢰할 수 있다. 이 경우 일품양평해장국은 3181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15평 기준). 업종 변경 시에는 일품양평해장국은 간판 제작비 250만원만 든다. 이 회사는 심지어 선착순 10호점 한정으로 현금 300만원 지원도 내걸었다.

아예 가맹점 원플러스원(1+1) 제도를 운영한 곳도 있다. 기존 점주가 지인에게 추천해 추가 출점할 경우 3000만원 넘는 지인 매장의 창업비는 안 받는 식이다. 단, 이 같은 파격적인 혜택은 브랜드 초기 가맹점 확장을 위한 한시적 프로모션인 경우가 많다. 가맹점 원플러스원 제도를 운영했던 A프랜차이즈 대표는 “창업 시장이 불경기여서 초기 가맹점 확장을 위해 내건 제도다. 여태까지 20곳 이상 가맹점이 무료로 창업했다. 가맹점이 100개가 넘은 현재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초저가 창업, 괜찮을까

▷비용 절감 이유 합리적인지 따져야

초저가를 내세우는 프랜차이즈로 창업해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괜찮은 곳도 있고, 안 괜찮은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창업 비용 절감 이유가 합리적인지 따져볼 것을 당부한다. 인테리어 자율 시공, 기존 집기 재활용, 배달 숍인숍, 무인 점포 등 비즈니스 모델 혁신으로 비용 거품을 제거한 경우라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반면 인력, 장비 등 필수 비용도 쥐어짜기식으로 줄여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거나 다른 숨은 비용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창업학 박사)는 “호경기에는 인테리어, 장비 고급화 경쟁으로 창업 비용이 필요 이상으로 높았다. 실용 소비가 확산된 요즘은 인테리어가 중요하지 않은 무인 가게 등 창업 비용 하향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 불필요한 비용 거품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지금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창업의 숨은 비용의 대표 사례는 ‘주류 대출’이다. 실제 창업비는 5000만원이 넘는데 이 중 대부분을 본부가 ‘무이자’로 대출해주겠다며 창업을 종용한다면 이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본부가 지정한 주류도매상에서 납품하는 술값에 높은 이자를 반영하는 식이다. 술값이 다른 도매상보다 비싸도 업체를 바꿀 수 없고, 영업 부진으로 폐업하면 수천만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독소 조항이 숨어 있는 경우가 적잖다.

초기 프랜차이즈가 사세 확장을 위해 가맹점 20~30개까지만 선착순 할인을 하는 곳도 많다. 이 경우는 브랜드의 시장성과 운영 노하우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다 꼼꼼한 시장 조사가 필요하다. 본부도 이런 리스크를 함께 지는 가맹점주에게 보상 차원에서 할인을 해주는 것이다. 주식으로 치면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된 ‘모래 속 진주’인지, 아니면 ‘잡주’여서 싼 것인지 가려내는 선구안이 필요하다.

“불황기에는 가맹점 모집을 위해 예비 점주가 혹할 만한 가격을 제시하는 프랜차이즈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모든 창업 비용과 리스크를 점주가 부담하던 데서 본부가 선투자하거나 ‘반직영 반가맹’ 형태로 공동 투자하는 식으로 점주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은 일면 긍정적인 현상이다. 단, 본부가 다른 비용이나 리스크로 부담을 전가시키는 경우도 적잖다. 무조건 싸다고 혹하지 말고, 과연 합리적인 방식으로 비용 절감이 이뤄졌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강병오 교수의 조언이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2호 (2021.06.09~2021.06.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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