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청년 작가들, 사회 반추하고 연민 자아낸다

손영옥 2021. 6. 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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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모색 전 40주년 기념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신진 작가 등용문 ‘젊은 모색’전이 4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강호연, ‘리-레코드 바이올렛’, 2021, 혼합매체 설치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유리 진열장 안에 레코드와 CD가 도시 빌딩처럼 수직으로 쌓여 있다. 그 너머로 남산타워가 서울의 이정표처럼 우뚝 솟아 있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 강호연(36) 작가의 설치 작품 ‘리-레코드 바이올렛’은 이처럼 기분 좋은 소음과 화려한 빛으로 밤이면 다시 태어나는 도시의 야경을 레트로 감성으로 시각화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국 사회의 호황기를 청각적·시각적으로 회상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요한한, ‘매개체’, 2020, 외피(소, 양), 냄비, 요강, 금속 대야, 프라이팬, 주전자, 구슬, 삼각대 등.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파리 1대학 팡테옹-소르본 조형예술학 석사를 졸업한 요한한(38) 작가는 북처럼 보이는 악기를 전시장에 펼쳐놓았다. 자세히 보면 냄비, 요강, 금속대야, 프라이팬 등 주방기기와 생활기기에 가죽 외피를 둘러 만든 북이다. 직접 쳐볼 수 있다. 우리의 남루한 일상에 북을 울리는 듯한 기분을 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신진작가 등용문 ‘젊은 모색전’이 40주년을 맞았다. 과천관에서는 올해 관문을 통과한 청년 작가 15명의 신작을 모아 전시 ‘젊은 모색 2021’전을 하고 있다. 초기 20명 이상 뽑다가 2010년대 들어 10명 내외로 운영했지만 올해는 40주년인 만큼 참가자 규모를 키웠다고 한다.

강호연 요한한 작가 외에 김산 김정헌 남진우 노기훈 박아람 배헤윰 신정균 우정수 윤지영 이윤희 최윤 현우민 현정윤 등이 선발의 영광을 누렸다. 분야는 회화 설치 조각 미디어 퍼포먼스 영화 도예 등 다양하다.

경희대 회화과를 나온 뒤 네덜란드 로테르담 피트 즈바르트 인스티튜트 파인아트에서 석사를 한 김정헌(30) 작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등장한 에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토템 조각처럼 제시한다. 뼈만 남은 동물 조각들이 연민을 자아내며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윤희, ‘피안의 밤’, 2021, 도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홍익대 도예과 출신의 이윤희(35) 작가는 욕망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유의 여정을 떠나는 소녀의 서사를 도자기 공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오고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조소 석사를 한 현정윤(31) 작가는 현대사회의 권력 관계를 아주 심플한 조각으로 위트 있게 표현한다. 꿇어앉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지그재그 형상의 기호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작품 전반에서 심각한 걸 심각하지 않게 말하는 30대 특유의 유머가 관찰된다.

현정윤, ‘무릎 꿇고’, 2019,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오일 바 등.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강수정 과장은 6일 “팬데믹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공통적으로 경험한 동시대 청년세대의 접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게 올해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젊은 모색전은 선발 기준에 나이 제한이 없다. 하지만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들이 추천할 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에 작품이 포함되지 않은 작가, 비엔날레급 큰 전시를 하지 않은 작가 등 활동 측면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주로 30대 작가들이 뽑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과 ‘현대차시리즈 작가’가 중견에게 돌아가는 것과 차별화해 미래 블루칩을 발굴하는 데 방점을 둔다.

중앙홀은 40주년을 기념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한 아카이브 전시로 꾸며졌다. 19회까지의 도록과 기사 등 자료가 전시되고 역대 출품작 20점을 AR(증강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QR코드에 아이패드를 갖다대면 역대 작가들의 작품이 튀어나온다.

젊은 모색전은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했다. 국립기관의 보수성을 깨고 신진 작가들의 실험성을 살려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격년으로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현재 미술계의 중추가 된 서용선(1985),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같은 국제적 무대로 도약한 육근병, 이불, 최정화(1989년), 서도호(1990), 문경원(2000) 등이 이 선발 프로그램을 거쳤다.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민관을 통틀어 가장 오래됐고, 국립기관이 주관하는 만큼 권위가 있다. 10년 후 이들의 활동이 주목되는 이유다. 9월 22일까지.

◇다른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어떤 게 있나

민간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여럿 있다. 2001년 시작된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전’이 가장 유명했다. 2014년부터는 선정된 10명 중 1명에게는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여하며 개인전을 열어주는 특전을 줬다. 2014년 그 첫 수혜자 이완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직행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2016년 제2회 박경근 수상자를 배출한 이후 기업 사정으로 중단됐다.

금호그룹 계열인 금호미술관이 2004년부터 매년 하는 영아티스트 공모 프로그램도 유명하다. OCI미술관에서도 심사를 거쳐 젊은 작가 6명을 뽑는 ‘OCI 영크리에이티브’ 제도를 매년 운영한다. ㈜삼탄의 문화재단인 송은문화재단은 매년 4명을 선정해 1명에게는 송은문화대상을 수여하며 이듬해 개인전까지 열어준다. 다른 상의 응모·추천 자격이 40세 이하인 것과 달리, 여기는 45세까지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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