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구글·페북, 돈 버는 곳서 세금내라"..법인세 100년 체계 바뀌나

이승호 2021. 6. 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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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IMF 총재,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재무장관(사진 왼쪽부터)이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법인세율 ‘바닥 경쟁’을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각국의 법인세율을 최소 15%로 하기로 합의했다. 조세 회피처(Tax Havens)에 본사를 두고 세금 내는 걸 피해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행태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기업 소재지에 과세를 해온 국제 법인세 체계도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일정 수준의 이익을 초과하는 다국적 기업에 대해 이익의 일부분은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법인세로 걷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합의가 이행되면 지난 100년간 국제 법인세 체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될 것이란 게 외신들의 평가다.


G7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 합의"

영국 런던 랭카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 둘째날인 5일(현지시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G7 재무장관들은 영국 런던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G7 국가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이다. 미국이 당초 21%의 최저법인세율을 제안했으나 각국의 이견 속 세율을 15%로 낮추며 합의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속도가 붙었다.

뿐만 아니다. 막대한 이익을 내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 영업 활동을 한 국가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익률이 10%를 초과하는 다국적 기업의 경우, 벌어들인 이익의 최소 20%는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법인세로 걷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기업의 본사가 있는 국가가 과세했던 국제 법인세 체계를 뒤흔드는 방안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바뀌지 않은 국제 조세 체제를 현대화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 CNBC도 “G7이 글로벌 세금 개혁을 위한 역사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100년만의 국제 조세 체제 변혁

[AFP=연합뉴스]

이 조치가 제대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조세 회피처를 활용해 세금 납부를 피해 온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도 “아직 최종 기준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빅테크 기업이 새 규칙의 교차점에 서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은 새 계획에 대부분 포함될 것”이라고 답했다.

바뀐 제도의 직격탄을 맞게 될 빅테크 기업은 일단 환영 입장을 내놨다. 닉 클레그 페이스북 글로벌 담당 부사장은 “오늘 합의는 글로벌 세금 시스템에 있어 명확성과 공적 신뢰 증진을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아마존도 대변인을 통해 “G7 합의는 국제 세금 시스템의 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환영할 만한 걸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발하던 美·유럽 8년 만에 합의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랭카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AFP=연합뉴스]

최저법인세율에 대한 G7의 합의는 8년 만에 이뤄진 진전이다. 지난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은 139개국 간 협의체인 ‘포괄적 이행체계(IF)’를 만들어 글로벌 최저 법인세 등 세금 체제 개편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대립 속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양측의 갈등만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빅테크 기업만 큰 피해를 본다며 관련 논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에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는 일명 ‘구글세’로 불리는 디지털세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빅테크 기업에 부과했다. 이에 미국은 이들 국가에 보복관세 위협을 가했다.


美는 기업 탈출 막고, 유럽은 디지털세 공식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 미국 메릴랜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경례를 받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상황이 급변한 건 지난 4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공정’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국은 6조 달러가 넘는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필요한 재원은 증세로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커지는 법인세 부담이 커지면 다국적 기업이 미국을 수 있다. 이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최저법인세율 합의가 필요했던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통해 미국은 다른 나라가 세금에서 상대적 이점을 갖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으로선 이번 합의로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과세를 공식화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미국의 반발과 무역 보복 없이 정당하게 빅테크 기업이 자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세금으로 거두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요원해 보였던 최저법인세율에 대한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번 합의로 법인세 바닥 경쟁을 끝내고, 미국과 전 세계의 중산층,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정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갈 길 멀어…G20·OECD 등 140개국 설득해야

OECD 주요국 2020년 법인세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G7의 합의로 전 세계 법인세 체계 개편의 첫걸음은 뗐지만 갈 길은 구만리다. 당장 다음 달 9~10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와 오는 10월 OECD 회의에서 관련 내용의 구체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 회의에서 법인세율 적용 국가와 과세 대상 기업 등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하지만 약 140개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수낙 영국 재무장관도 “G7 합의는 단지 첫 단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낮은 법인세율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던 국가의 반발이 변수다.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아일랜드는 12.5%의 법인세율을 앞세워 빅테크 기업의 유럽 본부를 유치해왔다. 파스칼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거대 내수시장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국가들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며 12.5% 세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유럽의 힘겨루기도 여전하다. 미국은 이번 합의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디지털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세 나라는 이번 합의가 실제로 시행될 때까지는 디지털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 내 반발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미국 기업에 손해가 된다며 반대하는 점도 변수”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저법인세율 실제 시행까지는 최대 4년이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가 도입돼도 각국이 '꼼수'를 구사하며 이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게리 허프바우어 미 피터슨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각국이 법인세율을 올리고는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보조금 등으로 세금 감면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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