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세대 무력감, 밝은 선율로 표현하고 노래하는 것 뿐"

김용현 2021. 6. 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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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은 일상에서 겪는 우울한 감정에 처방전을 내리듯 노래를 짓는다. 사진은 박소은이 초록색 식물에 둘러싸여 무표정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 왼팔에는 외할아버지와 스쿠터를 타던 유년시절 모습을, 오른팔에는 우주복을 입은 자신을 새겼다. 유어썸머 제공


‘이대남·이대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싱어송라이터 박소은(24)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소은은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엄청 유명해져서 자신의 고향 고강동을 다 사버리겠다고 선언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서울의원과 마트를, 어머니에겐 백화점을, 친구들에겐 자동차를 선물하겠다고 한다. 엄청 비싼 비행기와 엄청 좋은 카메라와 컴퓨터를 사고 자신을 열한 명이 동시에 사랑해도 한 사랑만 할 거라고 말한다.

아리송한 그의 말은 박소은이 지난해 3월에 낸 첫 정규앨범 ‘고강동’의 대표곡 ‘고강동’의 노랫말이다. 집 한 채도 아니고 경기도 부천 고강동 땅 전체를 어떻게 살까. 앨범 커버에 등장한 박소은은 호화로운 집에서 추리닝을 입고 돈벼락을 맞는다. 그의 얼굴을 가득 덮은 돈은 부동산 보드게임 ‘부루마블’ 속 가상 화폐다. 소속사 유어썸머의 사무실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박소은은 “우리는 사실 부루마블 게임판 위에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이 나를 갖고 장난치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소은은 서울예고 3학년 때인 2015년 tvN ‘슈퍼스타K7’에서 ‘그믐달’을 구슬프게 불러 주목을 받았다. 그믐달이 100번 찾아오면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어머니의 아픈 거짓말을 담은 이 노래는 심사위원 백지영을 눈물짓게 했다. 이듬해에는 제27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취해서 그래’로 장려상을 받으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박소은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취미로 보컬학원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재능이 있다’고 하시면서 ‘20살 돼서도 노래를 하면 꼭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나가봐라. 상을 타면 좋은 음악가라는 뜻’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로 나가야 한다. 그는 “독립해서 자취한 지 오래됐는데 매달 월세를 내다보면 숨을 쉬기만 해도 돈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며 “그게 싫어서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나 알아봤더니 내가 평생 벌 수나 있는 돈일까 암담해지더라”고 토로했다.

그의 절망은 ‘고강동’의 해학으로 이어졌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서 두 살부터 열세 살까지 자란 정신적 고향인 고강동 땅을 전부 사버리겠다는 노랫말은 이렇게 나왔다.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성공하면 뭐하고 싶어’ ‘로또 1등 당첨되면 뭐 할래’라는 물음에 답하듯 자신의 꿈을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포크에 컨트리 음악이 섞여 정겨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 모든 말이 허풍일 수밖에 없다는 걸 본인도 알지만, 그가 갖고 싶고 주고 싶은 것은 결국 사랑과 위로다.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아깝다고 못 사면서 연로해진 외조부모에겐 ‘서울 의원도 마트도 당신들 것’이라 말한다. 서울의원은 그가 아플 때마다 할머니가 데려가던 병원이다. 주말에만 백화점 음식을 들고 자신을 찾아왔던 어머니에겐 ‘집을 한 채 주고 그 안에 백화점을 두겠다’고 말한다.


노래엔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준 할아버지의 기억도 배어있다. 그는 “딸만 셋이라 손자를 원했던 가부장적 할아버지가 저와 같이 살면서 ‘손녀 바보’로 바뀌셨다고 한다. 제가 유치원 다닐 때 할아버지가 저를 매일 스쿠터에 태워주셨다”며 “고3 때는 할아버지가 제 입시를 위해 삼겹살을 사주면서 왕복 4시간 통학 길을 함께해주셨다”고 말했다.

박소은은 스스로를 “누구나 겪고 느끼는 감정을 노래하고 위로하는 뮤지션”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노래에는 그의 삶 속 일상이 담겨있다. 1집 수록곡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는 카페에서 30대 둘의 짧은 대화를 엿들은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는 “옆에서 ‘요즘 애들은 발랑 까져서 지옥에서 불탈 거다. 맨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달라’라고 소심하게 말한 적이 있다”며 “사회에서 정해놓은 도덕과 규율에 모두 맞춰 살면 인간으로서 자율성이 있나 하는 생각에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곡에선 그들에게 화를 내기보단 손을 내민다.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나는 누군가랑 춤을 출래/ 잠깐만 지금이 제일 좋아’라고. 일종의 화해다. 다른 인기곡 ‘너는 나의 문학’은 친구와 대화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져 대신 생각해낸 표현을 노래했다.

박소은의 노래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 걸쳐있다. 그는 “밝은 멜로디에 밝지 못한 가사를 지향한다. 듣기 편안한 멜로디를 따라 생각 없이 듣다가 노래에 담긴 메시지에 ‘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든 일을 노래로 쓰면 마법같이 괜찮아진다. 노래는 저한테 주는 약”이라고 말했다.

그의 노래는 자신뿐 아니라 비슷한 아픔을 겪고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처방전 역할을 한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를 N포세대(결혼 취업 등을 포기한 세대)라고 하잖나. 삶에 기본적으로 우울함이나 무력감 같은 게 깔린 것 같다”며 “우울한 감정을 말하면 전염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아니더라. 같은 고민을 담은 노래를 불러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의 음악적 기반은 한국 소셜미디어서비스 1세대 싸이월드다. 박소은은 “저는 싸이월드 세대인데 도토리를 충전하면 ‘쥬크박스’를 채우기 위해 맨날 음악만 샀다. 친구들 사이에선 쥬크박스 부자라 소문이 났다”며 “그때부터 싸이월드에 들어가면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들어봤다. 밥 딜런이나 비틀즈로 대표되는 포크와 컨트리, 블루스가 제일 좋았다. 이 정도면 포크가 저를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소은은 포크를 모든 음악의 뿌리로 여긴다. 그는 “포크로 모든 음악을 노래할 수 있다. 평생 늙지 않는 음악이라 생각한다. 몇십 년이 지난 밥 딜런의 노래가 지금도 좋지 않나. 100년 뒤에 들어도 똑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은은 오는 8월에 낼 싱글 앨범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정규앨범 ‘고강동’에선 컨트리 록을, ‘너는 나의 문학’에선 신스 팝을 조금씩 섞어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며 “더 본격적으로 록 사운드를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기타리스트로서 꿈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노래를 들은 사람들로부터 ‘박소은이 박소은했다’라는 말을 듣는 게 제 꿈”이라고 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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