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 땡, 아재 수만명 몰렸다..민방위 기자 '얀센 코인 성공기'
SNS엔 '동지'들 성공담..'고시' 비유도
신청 18시간 만에 '완판', 접종일만 남아
■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국내로 속속 도입되고 있다. 기존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AZ)에 더해 6월에는 모더나, 얀센 백신이 새로 들어온다. 특히 일선 의료진에 접종하는 모더나와 달리 얀센은 일반인 접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30세 이상 예비군과 민방위, 국방부·외교부 공무원과 군인 가족 등 국방·외교 관련자를 합쳐 371만5000명이 대상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예약 기간은 6월 1일부터 11일, 실제 접종은 10일부터 20일까지다. 얀센 백신의 사전 예약 과정은 매끄럽게 이뤄졌을까. 기자가 실제로 경험한 신청 첫날 풍경을 1인칭으로 정리했다.
」
36세, 민방위 5년차 기자. 5년차라는 것도 지난주 주민센터에서 보낸 교육훈련 통지서를 보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대한민국 민방위 대원이라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일지.
지난달 30일 미국에서 얀센 백신 101만2800회분이 들어온다는 속보가 떴다. 현역 군인 대신 30세 이상 예비군·민방위(357만8000명) 등에게 접종된다는 소식과 함께. AZ, 흔히 말하는 '아재 백신'으로 대표되는 '노쇼 백신' 예약은 언감생심. 회사와 집 근처 의료기관을 뒤져봐도 여분 백신량 '0'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얀센에 코로나 면역의 마지막 희망을 올인하기로 정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혈전 부작용과 예방 효과가 66%대로 낮다는 건 알고 있었다. 화이자 95%, 모더나 94.1%이니 말 다 했다. 특히 확률이 낮은 부작용보다 백신을 맞아도 항체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기껏 아프게 백신 맞았는데 '물백신'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고민 끝에 가족을 위해 얀센을 접종키로 결정했다. 사전 작업은 필수.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빠르게 동의부터 받았다.
하루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친 뒤, 31일 저녁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예비군·민방위로 한정하면 수치상 경쟁률은 3.5대1. 어림잡아 이들 4명 중 1명 이상은 얀센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공지한 얀센 예약 시점은 1일 0시. 하품을 하며 20분 전쯤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얀센 신청 관련 기사를 정독했다. 폭풍전야일까.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접종 사전 예약 사이트(ncvr.kdca.go.kr/cobk/index.html)는 잠잠했다.
수강 신청과 명절 기차 예매 과정서 필수라는 '네이버 시계'를 켜놓고 1분, 1초 흘려보내던 찰나. 11시57분께 '예방접종 예약하기' 버튼을 무심코 눌러보니 접속이 이뤄졌다. 공지 시간보다 빨라서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이미 2000여명이 내 앞에 접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 대기시간 90초라는 글자와 함께 "재접속하시면 대기시간이 더 길어집니다"라는 경고 때문에 마우스에서 잠시 손을 떼야 했다.
2분쯤 기다려 겨우 접속했더니 본인 인증 과정서 문제가 생겼다. 휴대전화-아이핀-금융인증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휴대전화부터 오류가 이어졌다. 여러 번 눌러도 실패. 아이핀도 실패. 다행히 마지막 금융인증서가 승인되면서 예약 화면으로 넘어갔다. 웹 브라우저 상단에 계속 오류 창이 떠서 긴장했지만, 제일 우려했던 서버가 터지는 일은 없었다.
'백신은 근무 중에 맞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에 서울 상암동 회사 앞 의원을 골랐다. 그리곤 별일 없는 14일 오전으로 D-데이를 잡았다. 상암동 주민들이 많이 신청했는지 이미 절반 가까운 자리가 나갔다.
시계를 보니 0시 6분. 불과 9분 동안 추석 KTX 표를 사고 대학 시절 인기 강의를 신청하는 수준의 긴장감을 겪어야 했다. 한숨을 돌린 뒤, 예약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 봤다. 그랬더니 6만명을 훌쩍 넘는 대기자와 함께 '46분' 기다려야 한다는 화면이 떴다. 그 뒤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얀센을 맞으려는 이들이 늘어갔다.
분위기를 살필 겸, 트위터에 들어가 봤다. '얀센'으로 검색해보니 축제의 한마당. 전국의 예비군·민방위 '아재' 동지들이 실시간으로 성공담을 올렸다. 접속대기창과 예약 완료 화면을 캡처한 '인증샷'이 속속 등장했다. 얀센 고시라거나 얀센 코인이라는 유머 섞인 비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감사도 쏟아졌다.
제일 눈에 띈 반응은 뜨거운 예약 신청 경쟁이 그 전 온라인 여론과 딴 판이라는 푸념. 얀센 백신은 화이자·모더나보다 효과가 떨어진다거나, 센 부작용이 있다는 식으로 '맞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본인이 얀센을 맞으려고 부정적 의견을 대대적으로 유포했다는 '연막작전' 설까지 제기됐다.
코로나 면역 하나로 밤늦게까지 안 자고 버틴 이들의 글을 일부 공유한다.
"이렇게 살 떨리는 예약은 수강신청 이후 진짜 10년만"(@ryu~~)
"얀센 인증하는 사람 = 30살 이상 아재"(@yor~~)
"신청 자격 있는 회사 친구들 다 매달려 있는데 본인 인증도 못 넘어가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 속출..."(@cab~~)
"얀센 코인 떡상한다"(@cri~~)
"얀센 듣보잡 어쩌고는 경쟁자를 줄여보려는 허튼 수작으로 드러나" (@ice~~)
'이게 뭐라고….' 잠자리에 누워서 스친 생각이다. 예약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백신 하나 맞아보려고 마음 졸이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같은 시각 컴퓨터 앞에 앉았던 다른 이들도 비슷했을 게다. 0시40분, '국민비서'가 보낸 카카오톡 예약 확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자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백신 신청자가 몰려서 서울 영등포구 등 일부 지역에선 예약 시스템이 먹통이 됐다고 한다. 민방위 명단이 누락돼 예약 자체를 못 한 사례도 나왔다. 보건당국은 "민방위 대원 대상자 여부는 행정안전부에서 질병청으로 보내준 명단이 예약시스템에 등록돼 확인하는 체계"라며 "최종 명단에 포함됐는지는 행안부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오전 9시 넘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여전히 수천 명의 대기자를 보내야 예약 신청이 가능했다. 오후 3시30분을 넘어서자 1차 예약 물량이 마감됐다는 공지가 떴다. 그 후 추가 예약을 받은 뒤, 오후 6시 4분 최종 종료됐다. 선착순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 약 18시간 만. 얀센 '완판'(약 90만명분)에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0시땡'에 나섰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젠 13일가량 남은 접종까지 기다릴 일만 남았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5세 여교사 제자와 성관계···17세 남학생은 "사랑이었다"
- "멀쩡하던 어머니·외삼촌, 화이자 접종뒤 같은날 숨졌다"
- 갑자기 날아온 흑인 주먹…뉴욕 한폭판서 아시안에 생긴 일 (영상)
- 가수 박군 중국집 뜨자, 에워싼 군복의 중년 4명 누구 (영상)
- 한동훈 "권력으로 비리 옹호, 그게 조국 사태 핵심이다"
- 폰 보는 순간 사촌형 격분···'코로나 의심' 고3 사망 전말
- 용의자는 억만장자 며느리···경찰관 총격 사망 미스터리
- 매진 또 매진…‘보복 관람’ 관객에 공연 티켓 동난다
- 정민씨 친구 폰 포렌식···경찰 "불화 등 확인되지 않았다"
- 의심받는 이준석·윤석열 궁합,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