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앞에서 트로트 부르는 어린이들.. 마음 아파요"
[월간 옥이네]
▲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 |
ⓒ 월간 옥이네 |
어린이를 한울님 대하듯 귀하게 여기라는 천도교 정신에 따라, 동요를 작곡하고 그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썼던 정순철 선생.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은 그 정신을 잇기 위해 정순철기념사업회에서 시작해 옥천군에서는 유일하게 군 지원을 받는 합창단이다. 현재 '예쁜 아기곰' 등 잘 알려진 동요를 작곡한 조원경 동요작곡가가 단장, 정순철기념사업회 조정아 사무국장이 총무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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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합창단을 이끌어 온 두 사람
"정순철짝찌꿍어린이합창단은 어린이를 사랑했던 정순철 선생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동요작곡가로서 어린이에게 동요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껏 이곳에서 지도와 지휘를 맡고 있어요."
매주 서울에서 이곳까지 장거리를 이동해 합창단을 이끄는 일이 지칠 법도 하지만 작곡가 조원경씨는 "운전하는 것을 워낙 좋아한다"며 웃는다. 그가 합창단을 맡은 것은 2014년 4월. 6명의 단원으로 2012년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이 결성됐지만, 조원경씨가 오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활동없이 유지만 되는 형편이었다. 정순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조정아씨는 과거 옥천 짝짜꿍 동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조원경씨를 설득해 어린이합창단 지휘를 부탁했다.
이후 이들은 옥천 전국 짝짜꿍 동요제, 지용제, 영동난계축제, 국악한마당, 대한민국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르고 지금까지 6번의 정기공연을 계속하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조정아씨는 "조원경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조정아씨 역시 민간비영리단체인 정순철기념사업회에서 무급직으로 온갖 일을 도맞으며 어린이합창단 운영에 열정을 쏟고 있다. 매주 목요일 합창단원 간식부터 공연 소품 제작, 머리 장식, 의상 입히기 등이 모두 그의 몫이다. 옥천 '동화읽는 어른모임' 초창기 회장이기도 했던 그의 열정은 어린이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요즘은 여기저기에서 트로트가 나오죠. 여기에 어린이도 참가해서 주목을 받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파요. 트로트가 어린이를 위한 노래는 아니잖아요. 어른들 위주의 프로그램만 많아지고 어린이가 설 자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아쉬워요."
실내 놀이터, 형형색색의 완구, 스마트폰 게임과 각종 영상물 등 놀 거리는 넘쳐나지만 조정아씨는 여전히 어린이를 위한 문화가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다움'을 살릴 수 있는 어린이 문화에 동요만큼 제격인 게 없다고 그는 덧붙인다. 특히 동요에는 '정서 순화 효과'가 있고 그런 동요가 어린이에게 건전한 문화를 심어주리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초청공연으로 캐나다에 다녀온 일이 있어요. 그때 우연히 캐나다 의회 단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준비한 한국 동요를 한 30여 분 동안 불렀나 봐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공연 덕분에 회의가 평소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더라며 고맙다고 그러더라고요. 가사도 모르는 노래였겠지만 동요에는 정말 마음을 정화시키는 어떤 힘이 있다는 걸, 그때 다시 한번 느꼈었죠." (조정아씨)
조원경씨도 동요가 지닌 힘을 이야기하며 "출생률이 적고 어린이 수가 적은 지금이지만,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교육과 언론에서 건전한 어린이 문화를 많이 다루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교육과정은 입시를 위주로 하면서 예체능을 등한시해왔는데,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가 그 부작용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어 건전하지 않은 문화에 노출되는 어린이를 보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 돼죠. 그런 점에서 동요가 더 많이 불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조정아씨)
▲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 연습 장면 |
ⓒ 월간 옥이네 |
어린이 문화의 힘을 믿는 두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은 씨앗이 되어 새싹을 틔워내고 있었다. 동요를 부르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 과거 합창단원이었던 어린이 중에는 합창단 활동을 발판삼아 음악의 꿈을 꾸는 이들도 있다.
강유빈(한림예고1) 학생은 합창단 활동 이후로 작곡을 시작했다. 합창단 활동을 시작하며 음악에 재미를 붙였고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앞으로도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가장 기억나는 활동은 음원 녹음이다. 녹음실에서 기계를 만지고 음원을 만들어내는 관계자의 모습을 보며 작곡가의 꿈을 키웠다. 합창단 활동이 아니었더라면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없었을 일이라며 그는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곳"이라고 회상했다.
과거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에서 반장이던 박정윤(옥천고1) 학생은 현재 고등학교에서도 밴드부 보컬을 맡고 있다. 성실하게 합창단 활동을 한 끝에 어린이합창단 졸업을 앞둔 중학교 1학년 때에는 KBS2TV 동요경연 프로그램 <누가누가 잘하나>에 출연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통일을 주제로 공연을 할 때 관객들이 눈물 흘렸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박정윤 학생은 "훗날 돌아보면 합창단 활동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합창단에서 동요를 배울 때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며 "나에게 동요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합창단 활동을 통해 어쩌면 이름조차 알지 못했을 정순철 선생을 만나고 그가 작곡한 동요를 알게 된 것 역시 이들이 얻은 것이다.
현재 합창단원으로는 ▲ 민선우(초4) ▲ 배수현(초4) ▲ 손민서(초4) ▲ 양윤슬(초4) ▲ 이규리(초5) ▲ 이서윤(초4) ▲ 정서인(초4) ▲ 진다솜(초6) 어린이가 활동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모인 이들이지만 특수부대원, 배우, 아이돌, 가수, 취미 많은 사람, 좋은 엄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 넘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개인이 어울려 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소리를 맞추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때로는 힘들 때도 있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줄 수 있어서 좋다는 그들이다.
"계속 연습을 하니까 정말 노래가 늘었어요. 공연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진다솜, 초6)
"저는 자기 전에도 노래를 막 불러요. 노래하는 게 너무 좋거든요. 제가 노래를 부르면 아빠가 예전보다 더 잘한다며 가끔씩 칭찬해주시는데, 그때가 제일 뿌듯해요." (정서인, 초4)
맑은 목소리로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진다솜 어린이는 동요를 배우면 "마음이 편하고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요즘 많이 들리는 아이돌 음악은 소리가 너무 세서 어지러울 때도 있다"는 것. 그는 "학교에서도 동요를 많이 가르쳐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 공연 모습(조정아씨 제공) |
ⓒ 월간 옥이네 |
▲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조정아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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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덮친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어린이합창단 역시 피해갈 수는 없었다. 모든 공연이 취소, 무기한 연기되면서 이들은 설 무대를 잃었다. 정순철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짝짜꿍 동요제만은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다름 아닌, 합창단원 모집이다.
"아이들이 와주어야 합창단도 힘이 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은 매년 공고를 통해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선발하지만 올해는 홍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이전 합창단원(이윤아 학생)의 어머니 강설희씨는 "딸이 합창단 활동을 통해 공부만 해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들에 비해 합창단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며 많은 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정순철짝짜꿍어린이합창단은 상시로 합창단원을 모집한다. 모집대상은 옥천 거주 초등학생이고 매주 목요일 5시 30분부터 7시까지 관성회관에서 연습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정순철기념사업회에 문의하면 된다.
1920년대 '어린이를 위한 선물'로 탄생한 동요는 세월이 지나며 빛이 바랬지만, 어린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정순철과 몇몇 어른들의 마음만은 여전하다. 더 좋은 선물을 주려는 이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에 화답하듯 합창단 어린이들은, 힘차게 노래한다.
"동요, 누가 부르냐고요? 우리가 부르지요!"
월간옥이네 통권 47호(2021년 5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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