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정민씨 폰'..경찰 24분차 실수가 24년 신뢰 깼다

최연수 2021. 5. 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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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6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 손정민 군 친구의 휴대폰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경찰은 고(故) 손정민(22)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했다. ‘법의학적인’, ‘과학 수사의’라는 의미를 가진 포렌식(forensic)이라는 단어는 한국의 검찰과 경찰에서는 ‘과학적 수사 기법을 사용했다’는 의미의 동사로 진화했다. 이번 사건에서 이 기법이 주목받은 건 손씨 실종 당일인 지난달 25일 손씨와 친구 A씨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손씨 휴대전화의 마지막 사용 내역 시간대를 확인하면 ‘A씨가 손씨의 휴대전화를 조작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의혹을 배척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포렌식 결과는 경찰의 노력을 허무하게 만들고 있다. 손씨가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한 시각을 공개하면서 ‘실수 아닌 실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출입기자들과의 정례 간담회에서 “실종 당일(25일)인 오전 1시 9분 이후로 손씨의 휴대전화에서 인터넷 및 앱 사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포렌식 결과로 나온 마지막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1시 9분으로 못 박은 것이다.


마지막 사용, 오전 1시 9분→오전 1시 33분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 故 손정민군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뉴스1

그러나, 이후 사실관계에 대한 네티즌의 이의 제기가 이어졌다. 사건 초기에 인터넷 등에 공개된 손씨와 그의 어머니가 나눈 카카오톡 내역에 따르면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눈 시간은 오전 1시 24분이었다. 한달 가까이 손씨의 시간대별 동선과 행적을 꿰뚫게 된 ‘네티즌 수사대’, 일명 ‘방구석 코난’들에게 경찰이 밝힌 ‘마지막 사용’은 앞뒤가 안 맞는 정황이었다.

이에 경찰은 다시 추가 설명을 했다. 손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오전 1시 33분으로 수정하면서다. 경찰 측은 “이날 간담회에서 확인해 드린 내용은 마지막 ‘인터넷·앱 사용 기록’이며 이와 별개로 통화·문자·메신저 송수신 내역의 경우 '인터넷 앱' 사용내역과 구분돼 관리된다"고 말했다. 손씨 휴대전화의 마지막 사용은 ‘인터넷 앱’이 오전 1시 9분, ‘카톡’은 오전 1시 24분, ‘통화’는 오전 1시 33분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 “카카오톡 내용은 다 알기 때문에 제외하고 발표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한 사설 포렌식 전문 업체의 전문가는 “카카오톡 역시 앱인데 경찰이 포렌식 과정에서 카카오톡과 앱을 따로 구분해서 관리했다고 발표한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4일 경찰의 손정민씨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발표보도에 달린 댓글들. [네이버 뉴스 캡쳐]

안 그래도 경찰이 못 미더운 네티즌들의 의심은 더 커졌다. “애초에 사건에 대한 시간대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수습한 것 아니냐” “쿠팡이츠 결제와 엄마와 카톡을 나눈 게 있는데 무슨 소리냐. 경찰이 A군 변호사인 줄 알았다” “포렌식 결과도 정확하지 않으면 다른 발표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차라리 경찰을 최면수사하자”는 등의 반응에 경찰도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 됐다.

‘다 알려진 사실’ 운운의 해명도 황당하다. 경찰은 이번 정민이 사건에 대한 의혹을 국민 앞에 나서서 설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늘 비공개·비공식 브리핑을 택해 놓고, 정작 실수가 나오니 ‘다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포렌식 결과를 발표하고도 불신만 키운 상황이 됐다.


24분의 차이, 24년의 신뢰 위협할 수도

반포한강사건진실을찾는사람들(반진사)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열린 '한강 대학생 실종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24분의 차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98년 2월 대검찰청에서 과학수사과가 출범하면서 모양새를 갖춘 이래 24년째 이어져 온 포렌식 기법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4분 차이밖에 안 나는 실수가 24년 쌓은 신뢰를 위협한 셈이다.

정민씨 실종 한 달이 다 되도록 국민적 불신 속에 헤매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한국 경찰의 현실이자, 한국 사회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실체적 진실 규명에 시간이 걸린다는 건 국민도 안다. 그러나, ‘방구석 코난’이 앞다퉈 나서게 한 건 또 다른 능력과 책임의 문제다. 불신의 빌미를 사건 초기부터 경찰 스스로 제공했던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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