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 더 스파이-총격전·추격전 없어도..화면 가득 긴장감

2021. 5. 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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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도미닉 쿡 감독/ 112분/ 15세 관람가/ 4월 28일 개봉
‘더 스파이’는 1960년대 초반, 소련 공산당 서기 흐루쇼프의 강경 노선으로 미국과 소련이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던 시절을 그려낸 영화다 이른바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스크린에 담았다. 흐루쇼프는 1959년 혁명을 이뤄낸 쿠바와 긴밀히 연계해, 미국의 턱밑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발상을 했다. 핵전쟁으로 두 나라가 공멸할 수도 있는, 전대미문의 위기였다.

영화는 실존했던 인물인 영국의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을 조명한다. 그레빌은 동유럽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글로벌 사업가다. MI6와 CIA는 그가 첩보 활동이나 국가 기관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 그를 소련 정보기관 소속의 거물 올레크 펜콥스키(메랍 니니트쩨 분) 대령에게 보내기로 한다. 기겁하는 윈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을 완수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가족마저 핵전쟁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협박성 발언이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윈은 능숙하게 비즈니스를 해내고 펜콥스키 대령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둘은 스파이라는 기묘한 동질감과 동료 의식을 느끼고 서로의 가족을 소개해주는 등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윈은 첩보 작전 실행 도중 소련에서 체포당한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올레크 펜콥스키는 즉결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뛰어난 연출이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첩보 영화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스파이 액션’은 이 영화와 거리가 멀다. 총을 쏘는 장면조차 거의 나오지 않고 격투 장면이나 추격전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이 있다. 모스크바의 통제되고 삭막한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침을 꼴깍 삼키게 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윈이 마주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보내는 시선, 그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긴장을 자아낸다.

등장인물의 심리와 1960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워낙 집중한 탓일까. 정작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서 소홀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만 봐서는 그레빌 윈이 왜 스파이로서 적임자인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미국이 어느 정도의 공포를 느꼈는지, 왜 CIA는 무리해서라도 그레빌 윈을 모스크바로 보내려 했는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긴박했던 정치적 대립이 영화에서는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윈이라는 개인이 느끼는 긴장감, 절박함, 처절함과 용기가 당시의 국제 정세와 더 잘 맞물렸다면 이 영화는 첩보 영화의 명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아쉽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인상적인 첩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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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9호 (2021.05.19~2021.05.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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