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뚫고 만나서도 코·주·부 얘기만"..재테크 스트레스

조민아,김지훈 2021. 5. 19. 17: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근본 원인은 집값 급등..물질만능주의 심화" 우려

암호화폐(가상화폐)에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났다. 코로나19 집합금지 탓에 6개월만에 친구들을 만난 자리였다. 친구들의 화려한 수익률과 제각각의 부동산 전망을 듣던 직장인 A씨(30)는 이내 불안감과 회의감에 휩싸였다. 그는 19일 “오랜만에 봤는데도 서로의 안부가 곧 재테크 상황 체크가 돼 버렸다”며 “얼마 전까지 돈 얘기만 하면 속물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재테크가 일상이 된 시대에 돈을 좇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피로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재테크는 평생 관심을 갖고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집값 이 부른 재테크 스트레스

회사원 B씨(26)는 요즘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삼성전자 주식을 추가 매수할지 머리를 맞댄다. B씨는 지난 1월 “올해 같은 ‘불장(대상승장)’에서 투자 안 하면 손해”라는 말과 반도체 슈퍼 사이클 전망을 믿고 삼성전자를 샀다. 그러나 최근 주가가 7만원대까지 떨어져 제대로 물려버렸다. B씨는 “집값이 비현실적으로 올라서 저축보단 투자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 힘든데 투자 고민까지 하려니 부담된다”고 말했다.

이른 바 ‘재테크 스트레스’는 2030세대가 극심하게 겪고 있다.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졌고, 노후 대비 부담은 더 짊어졌다. 저성장·고령화 시대로 앞날은 가시밭길인데 집값만은 치솟은 현실에 마음만 더 급해지는 것이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의 지난해 말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조사 대상 만 25~39세 700명) 중 70.6%는 ‘내 집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73%는 ‘젊은 층이 자신만의 소득으로 집을 마련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내 집 마련에 대한 필요는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는 셈이다. 또 응답자 중 86.6%는 ‘노후 준비는 스스로 해야 한다’며 부담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도 재테크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무엇보다 집값 급등이라고 입을 모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는 초고속 성장을 해왔다. 고작 한 세대 안에서도 ‘부동산 가격 뻥튀기’를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며 “직·간접적으로 그런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면 사회 전체가 투자를 넘어 투기 성향이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 세대가 누린 자산 증식 기회가 없었던 젊은 층이 투기 행태를 보이는 걸 비판만 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금 젊은 층의 절박함은 부동산 폭등이 기여한 부분이 크다”며 “노동으로 부를 축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가면 갈수록 ‘비(非)투자자’가 뒤처지는 구조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탕주의에 집단 패닉 우려

부동산 급등을 차치하고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서 물질만능주의가 더 강화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교수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새로운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가 부각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기존 물질주의가 계속 강화되는 방향을 보인다”고 했다. 2010년 코스피 2000 돌파로 재테크 열풍이 불었을 때 반작용으로 ‘다운시프트(downshift·물질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느린 속도로 삶의 만족을 찾자는 주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과 다른 점이다. 곽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고용 불확실성 등이 커지면서 오히려 ‘돈 벌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는 한탕주의가 심해진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위험자산 재테크에만 몰두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적잖다. 구 교수는 “노동의 가치가 강조되는 한편 자아실현에 대한 논의도 풍성해져야 하는데, 지금은 물질적인 부분에 과도하게 쏠려있다”며 “특히 젊은 층이 장밋빛 기대만 갖고 투자에 뛰어들면 이후 좌절감, 실망감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언젠가 하락할 수 있는 것들인데 요즘처럼 과열된 상태에서 갑자기 거품이 꺼져 버리면 집단적인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김지훈 기자 minaj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