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백신 주권을 정말 원한다면

2021. 5. 1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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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산 백신 개발 의지는 매우 강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을 개발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두 차례 찾았다.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도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한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해 국산 백신 개발을 총력 지원하겠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백신 개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펼치고 모더나 설계와 임상에 약 1조1380억원(10억 달러)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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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정부의 국산 백신 개발 의지는 매우 강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백신을 개발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두 차례 찾았다. 첫 방문은 지난해 10월 15일 경기도 성남의 연구시설이었고, 두 번째는 올 1월 20일 경북 안동의 생산시설이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 생산시설을 찾았다는 건 백신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도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한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해 국산 백신 개발을 총력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여당의 다른 고위 인사들도 ‘코드’를 맞추고 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백신 주권이 또 하나의 안보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백신 자주권’을 말하면서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 국내 백신이 개발될 수 있도록 총력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말은 진정성이 의심된다. 정부가 올해 백신 임상지원예산으로 책정한 돈은 687억원이다. 임상 3상을 하는데 평균 2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하니 백신 한 개 임상을 하는데도 부족한 돈이다. 빌 게이츠가 재단 등을 통해 국내 기업에 지원하는 돈과 비교하면 더 초라하다.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국제민간기구인 감염병혁신연합(CEPI)은 SK바이오사이언스에 약 454억원을 지원한다. CEPI는 게이츠재단이 후원해 설립된 기구다.

정부의 임상지원예산 687억원도 기업에 전부 직접 지원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만난 한 기업 관계자는 “올해 정부에서 받는 돈은 수십억원”이라고 말했다.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그는 굳은 표정으로 “수십억원이 맞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 간접 지원은 지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정부에 기대를 내려놓은 건 분명해 보였다.

백신 개발에 성공한 나라들은 엄청난 투자를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백신 개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펼치고 모더나 설계와 임상에 약 1조1380억원(10억 달러)을 지원했다. 이와 별도로 1조7000억원 선구매 계약도 했다. 화이자에는 기술 개발 지원금을 주지 않았지만 2조2000억원어치 백신 선구매 약속을 했다. 독일 정부는 화이자 공동개발사이자 자국 기업인 바이오엔테크에 약 5000억원을 지원했다.

우리나라 제약사와 기업들이 백신을 개발하려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해 보인다. 백신을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다. 국내 제약사, 기업이 다른 질병에서 자체 개발한 백신도 손에 꼽을 정도다. 상식적으로 미국이나 독일 정부보다 더 많이 투자해야 단기간 개발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충분한 예산 지원 없이 ‘끝까지 지원’ ‘반드시 지원’을 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부터 국산 백신 개발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연말까지 백신 개발 지원 전략을 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 결과는 687억원이다. 이러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백신 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진짜 백신 개발을 원하는 게 맞는지, 백신 주권을 그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닌지 하는 의심이다. ‘우리가 방역도 성공하고 백신도 개발할 수 있다’는 구호로 지지율을 지키려는 속셈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게 아니라면, 진짜 백신 주권을 원한다면 정부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기술 개발, 임상을 위한 지원액을 늘리고 선구매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제약사와 기업이 알아서 백신을 개발하기를 손뼉 치며 응원만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권기석 이슈&탐사2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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