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자기 일을 빼앗긴 사람들

2021. 5. 1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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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몇 년 사이에 집값이 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재산이 몇 억원씩 불어났다고 기뻐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의 돈을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해 3억원을 모으면 살 수 있었던 집을 6억원을 모아도 살 수 없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3억원이라는 미래의 돈을 도둑맞은 셈이 아닌가. 도둑맞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땅과 주식과 가상화폐에 뛰어든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투기 공화국이 돼 있다.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둑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까지 이 대열에 합류해 있다. 혜택을 본 사람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치의 비정상적인 상승과 투기 과열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교훈을 주입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삶의 기준을 바꾼다. 무엇보다 자기 일, 즉 직업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는 것이 큰 문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유포되면 성실해질 수 없다. 예컨대 직장 월급을 모아서는 달아나는 집값을 따라잡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기 일에 성실할 수 없다. 직업을 통해 얻어야 마땅한 삶의 보장을 직업이 아닌 것, 예컨대 투기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근무 중에 주식시세표를 들여다보고 부동산 개발 정보를 쫓아다닌다. 최근의 젊은이들에게는 그것이 가상화폐인 모양이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내가 아는 30대의 맞벌이 부부는 최근에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둘 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수입이 적다고 할 수 없다. 부모의 도움을 받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겠지만 서울에 아파트도 한 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만으로는 불안해서라는 것이 이들이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경우와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다들 무엇에 쫓겨 산다. 세상을 참 열심히 산다고 칭찬할 수 없어 씁쓸하고 안타깝다.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세상에 기여한다는 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기독교는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인식한다. 직업(Beruf)은 소명(Berufung), 즉 부르심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세상에서 맡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때 자기 일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의무가 되고, 신이 하는 큰일을 거드는 성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이상적인 직업관을 유지하며 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준다는 믿음은 최소한의 발판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사회는 기준도 원칙도 없는 아사리판이 되고 만다. 허겁지겁 무슨 일이든 하게 되고 무엇보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 예컨대 투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맡아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 자기 일을 통한 보람이나 자부심이나 소명은 공허한 말이 되고 만다.

상식은 바뀌고 가치관은 전도된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이해돼 왔던 일, 예컨대 투기는 일반적인 일이 되고 당연한 것이 되고 심지어 자랑스러운 것이 된다. 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하거나 무능한 사람이 된다.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 투기를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투기를 일처럼, 일보다 더 열심히 한다. 자기 일은 뒷전이다. 직 대신 집을 택한 고위 공무원이 ‘귀감’이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의) 돈을 도둑맞을 것 같다는 불안에 더 크게 조종당한다.

사람들에게 자기 일을 줘야 한다. 자기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정치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할 ‘자기 일’일 것이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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