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후한의 헌제와 중국몽의 시진핑

2021. 5. 19. 00: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능 무책임한 이상주의자 헌제
중국몽 이룰 강한 리더 시진핑
미·중갈등의 투키디데스 함정 위험
통합으로 위기극복할 대통령 원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삼국기밀’이라는 드라마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헌제, 그리고 사마의를 중심으로 삼국시대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드라마를 본 후 『사마의 평전』과 후한의 역사 관련 책들을 찾아 읽어 보았지만 많은 내용들은 꾸며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본적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대하드라마로 헌제가 어떻게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는지,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지, 지도자의 이상과 현실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주의 책략가 사마의와 달리 헌제는 황실의 부흥을 원했지만 조조의 실질적 지배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능력한 이상주의자였다. 하지만 드라마는 헌제를 덕이 많은 성군으로 그리고 있다. 헌제는 백성들을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여기저기 내비친다. 전쟁 후 배고픈 백성들을 위해 얼마 안 되는 황실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고 자신을 배신하고 위해하는 사람도 용서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조조를 살해할 기회를 사마의가 알려주고 그를 죽이자고 했지만, 조조가 살해되면 전국이 혼란에 빠져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헌제는 이를 거부한다.

조조가 죽자 헌제는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황제의 위를 선양하며 산양공이라는 신분으로 낙향해 15년의 폐제 생활을 한다. 그의 사후 그를 헌제라고 칭한 것은 한나라를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바쳤다는 ‘바칠 헌’(獻)을 뜻하는 부끄러운 이름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한나라의 운명은 끝나고 조비는 위나라를 세운다.

180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은 다르다. 천년 이상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서구와 일본의 침략으로 수모를 겪은 20세기 초 굴욕의 역사를 와신상담하는 시진핑은 중국몽을 꿈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다. 아버지 시중쉰이 마오쩌둥과 혁명동지였기에 태자당의 일원이었지만 문화혁명 시기 비참한 하방생활을 겪었다. 공산당 입당도 여러 차례 실패하고 태자당의 일원이라는 의심과 견제도 많이 받았던 시진핑은 별로 눈에 띄지 않게 권력의 핵심에 서서히 접근해 마침내 후진타오에 이어 국가주석이 되었다.

시진핑이 내건 중국몽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 이전 10년에 비해 국민 1인당 GDP를 두 배로 만들어 1만 달러를 달성하는 소강사회를 이루는 것과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경제와 문화를 세계 최고로 만드는 부강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시작된 14차 5개년규획에서는 내수확대, 첨단기술개발, 신에너지 개발 등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시진핑은 나라의 치욕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물망국치(勿忘國恥)를 되새기며 구 소련처럼 자본주의가 유입되는 개혁개방 과정에서 국가의 정치적 통제력이 상실되면 부패와 무질서가 만연하여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은 시진핑은 측근 왕치산을 통해 공안의 수장 저우융캉을 비롯하여 군과 당 고위직 인사들을 포함한 수만명의 당원을 범죄행위로 기소하는 반부패 운동을 추진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당의 비리를 척결함으로써 국민의 신임을 얻은 것이다. 이런 리더십을 통해 2023년 임기가 끝나는 시진핑은 연임규정을 폐지해 장기집권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중국몽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의 학장을 역임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국제질서에서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신흥세력이 부상하게 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그는 2017년 출간한 『예정된 전쟁』에서 15세기말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의 대립이후 전 세계에서 16번의 지배세력과 신흥세력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 중 4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쟁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이제 앞으로 10년 전후해 중국이라는 신흥세력이 미국이라는 지배세력에 대항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미 시작된 미중 갈등은 투키디데스 함정의 전조현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마찰로 중국을 압박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기술규제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제 두 세력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면 한반도의 미래는 풍전등화의 신세가 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책임한 포퓰리스트였던 후한의 헌제와 30년 뒤 중국몽을 꿈꾸는 강력한 지도자 시진핑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곧 대통령선거다. 내로남불로 자기편만 챙기며 편협한 정치를 하거나 헛된 이상주의에 빠져 현실 인식이 부족한 대통령은 안된다. 우유부단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대통령이나 여론의 동향이나 살피고 포퓰리즘으로 표심만 구하는 대통령도 안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엄혹한 시기에 날카롭게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며 국민통합을 이끌어 나라의 위기를 헤쳐 나갈 대통령을 뽑고 싶다. 6·25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폭풍전야처럼 미중갈등이라는 투키디데스 함정이 엄청난 파고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